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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취업과 일자리

일본, 법정 정년보다 ‘고용 연장’ 초점 [정년 연장 성공 조건] [정년 연장 성공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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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 정년 폐지…유럽선 연장 반대도


세계 주요 국가들도 고령화, 인구 감소 추세에 따라 정년 기준을 올리거나 폐지하고 있다. 미국은 1986년, 영국은 2011년 정년제를 폐지했다. 근로자 정년을 관련법으로 명시해 유지하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 일본 등 소수다.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덴마크, 폴란드 등 다수 국가에는 의무적인 개념의 정년은 없고 정년퇴직을 정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곳도 있다. 이들 국가 대부분은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사실상 정년으로 여긴다. 이 정년을 독일은 67세로, 프랑스는 64세로 차츰 올리는 추세다.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국가도 정년 시기를 폐지하거나 연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년 연장 논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은 가운데 정부는 일본의 ‘계속고용’ 사례를 주목한다. 우리나라보다 고령화사회를 먼저 겪은 일본은 기업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사실상 고령층 완전 고용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경이코노미

일본 법정 정년은 60세지만

기업에선 ‘70세 현역’이 활약 중

일본은 1994년 60세 정년 의무화를 입법하고, 1998년 시행했다. 법정 정년은 여전히 60세로 한국과 같다. 하지만 일본에서 근로자는 원하면 70세까지 일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억지로 법정 정년을 연장하지 않고 기업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고용 연장’ 개념으로 접근했다. 기업이 ▲65세까지 정년 연장 ▲정년 폐지 ▲계속고용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세 가지 선택지 중 기업 대부분은 계속고용을 택했다.

후생노동성의 고령자 고용 상황 보고에 따르면, 2022년 기준 65세까지 고령자 고용 확보 조치를 한 기업 비율이 99.9%에 달한다. 구체적으로는 정년을 아예 없앤 기업이 3.9%, 정년을 올린 기업이 26.9%, 계속고용 제도를 채택한 기업이 69.2%다. 일본 내각부의 ‘2023년 고령사회 백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일본 내 65~69세 취업률은 50.8%, 70~74세 취업률은 33.5%다. 75세 이상 고령층의 취업률도 11%나 된다.

이런 ‘실질적인’ 정년 연장이 가능했던 것은 수십 년 넘게 차근차근 진행된 사회적 논의의 결과다. 일본 정부는 정년 연장을 위한 ‘노력 규정’을 먼저 만들고 이후 ‘법정 의무화’로 나아가는 단계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일본은 1994년 정년을 60세로 입법하기 전인 1986년부터 기업이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맞추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1990년에는 정년 후에도 재고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강제 조항이 아니지만 덕분에 1994년에는 이미 일본 기업 80% 이상이 60세 정년제를 도입했다. 이들 기업 대다수가 법제화 이전에 노사 합의로 60세 정년을 시행했다.

이후에도 일본은 60세 정년을 맞은 근로자가 희망할 경우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틀을 잡아왔다. 2000년 ‘65세까지 고용 확보 노력 의무화’라는 조항을 만들었고, 이어 2004년에는 ‘65세까지 고용 확보 단계적 의무화(일부 근로자 제외)’ 조항까지 덧붙였다. 2012년 관련법을 개정해 2013년부터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무화했다.

2020년 일본은 관련법을 한 번 더 개정하고 기업이 70세 고령자까지 ‘취업’ 기회를 마련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명시했다. ‘65세 고용 의무화’가 12~13년가량 걸린 점을 감안한다면 70세 정년은 2030년 중반에 정착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70세 정년이 완전 의무화된 것이 아닌데도 일본 기업들은 이미 고용을 70세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토요타자동차는 최근 65세 이상 시니어 사원 재고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지금은 60세 정년이 지나면 65세까지 재고용 형태로 일할 수 있는데, 이를 70세까지로 확대하기로 한 것. 인테리어·가구 업체 니토리도 지난 7월부터 재고용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높였다. 아사히맥주도 70세, 메이지야스다생명보험도 사실상 70세가 정년이다. 지퍼 제조 업체 YKK는 2021년 아예 정년 제도를 없앴다.

주목할 점은 고령자 고용 연장을 위한 일련의 조치에도 지금까지 일본 법정 정년은 여전히 60세라는 점이다. 일본이라고 법정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아직 65세 정년제를 실시하는 기업 비중이 30%가 안 돼 정년 연장을 법으로 못 박는 것이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또 일본 정부는 65세 고용 확보 조치를 시행할 때 기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다. 재고용된 근로자 임금 수준이 낮아질 경우 정부가 임금 일부를 보전해줬다. 또 노사 협약으로 재고용할 대상자의 기준(건강, 근무 태도 등)을 정해 기업이 선별하도록 제도화했다. 여기에 더해 상당수 일본 노조는 정년을 연장하면 회사 재정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측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재고용에 동의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에서 고령자 고용이 안착한 것은 노·사·정 간 충분한 합의가 이뤄진 결과라고 평가한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에 맞는 정년 연장을 안착시키려면 고령자 고용을 확대할 사회·제도적 논의를 단계적으로 밟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는 정년 연장 과정에서 발생할 진통을 최소화할 다양한 로드맵을 고민해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화 코앞 중국·태국도 정년 연장

유럽 대부분 62세 이상…스웨덴 68세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다른 국가도 잇따라 ‘정년 시계’를 늦추고 있다.

당장 이웃 국가인 중국은 내년부터 남성 근로자의 정년을 63세로, 여성은 55~58세로 올리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현행 법정 정년은 남자 60세, 여자 50세다. 70여년 전에 정해졌다.

앞서 중국 당국은 14차 5개년 계획,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보고서 등에서도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점진적인 정년 연장을 꼽은 바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갑작스럽게 정년 연장 카드를 꺼낸 이유는 최근 저출생과 노령화로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는 데다 연금 재정이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60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35년쯤 4억명을 돌파해 전체 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지난해 사망자 수는 출생아 수를 200만명 초과했을 정도로 인구 감소세도 가파르다.

다만 급작스러운 정년 연장 발표에 청년층 반발이 극심한 분위기다. 가뜩이나 청년 취업난이 극심한데 세대교체가 늦어지면 일자리가 더욱 줄어들 거라는 우려에서다. 중국 커뮤니티에서는 “내가 태어났을 때 그들은 인구가 너무 많다고 하고, 출산하려 할 때는 너무 적다고 한다. 일하고 싶으면 너무 늙었다고 하고, 은퇴하고 싶으면 너무 어리다고 한다”며 한탄하는 시가 밈으로 유행할 정도다.

최근에는 태국 정부가 공공·민간 부문 전체의 정년퇴직 연령을 65세로 높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현재는 공공 부문 60세, 민간 부문 55~60세로 적용 중이다. 태국 정부는 정년 연장 이유로 보건 수준 향상에 따른 수명 증가, 또 이에 따른 사회 보장 기금 고갈 우려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외에 아시아 국가에서는 대만이 지난 7월 노동력 감소 등을 이유로 65세 정년 제도를 폐지했다. 싱가포르는 현재 62세인 정년을 2030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유럽 국가는 최소 정년이 62세 이상이다. 의무적인 개념의 정년은 없다. 정년퇴직을 정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곳도 있다. 이들 국가 대부분은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사실상 정년으로 여기고 있다.

대표적 ‘복지 국가’로 불리는 스웨덴은 정년이 68세다. 제조업 중심 독일은 현재 66세인 정년을 2029년까지 67세로, 스페인은 2027년까지 67세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프랑스 역시 현재 62세인 정년을 2030년 64세로 확대하기로 하는 등 유럽 국가에서도 정년 연장 움직임이 활발하다.

다만 유럽 내에서도 정년 연장을 두고 찬반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연금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정년을 연장해 수급 연령을 늦추자는 정부 주장과 이에 반대하는 국민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정년 연장을 노동자가 반대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실제로 스위스 연방정부는 올 3월 연금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정년을 연장하는 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진행했는데, 74.5%가 반대표를 던졌다. 연금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프랑스 역시 정부가 62세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전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헌법위원회 합헌으로 정년 연장안이 통과됐지만,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높다.

인터뷰 | 김경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회장
“일률적 정년 연장 안 돼…기업 사정 맞게”
매경이코노미

김경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회장


김경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회장은 여성가족부에 합류하기 전까지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장, 노동시장정책관, 고령사회인력정책관, 근로기준정책관,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하는 등 고용노동부에서 공직 생활 대부분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시절 여성가족부 차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배우자 출산휴가제 등의 토대를 마련했고 탄력근로제 관련 노사정 합의를 도출하는 성과를 낸 ‘정책통’이다. 중소기업 근로자를 위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 등 퇴직연금 제도 개편에 기여하기도 했다. 김경선 회장에게 정년 연장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Q. 일률적인 정년 연장보다는 기업 사정에 맞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A. 중소기업에서는 정년이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의 경우 법정 정년을 단순 상향해버리면 당장 청년을 신규 채용할 여력이 크게 줄어든다. 기업 단위에서 노사가 협의해 60세 이상 고용을 계속할 방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단체협약을 통해 생산직 근로자가 원할 경우 60세 정년 후에도 1년 더 일할 수 있도록 한 ‘숙련 재고용제’를 만 62세까지 1년 더 늘리기로 했다. 대신 임금은 생산직 초봉 수준이다. 임금은 낮추되 정년 후 계속고용을 늘렸으니 노사 모두 ‘윈윈’한 셈이다.

Q.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했는데.

A. 과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근거로 청년 고용과 고령자 고용이 상충관계(trade-off)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거시적인 통계 분석이다. 기업 단위로 보면 정년이 연장될 때 채용 여력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결과다. 실제 국내에서 법정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정년 연장 대상이 1명 증가할 때마다 민간 기업에서는 청년 고용이 평균 0.2명씩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Q.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위 ‘낀 세대’는 역차별로 느낄 듯하다.

A. 정년을 일률적으로 연장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다. 2016년 60세 정년이 의무화됐을 때도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정년을 55세나 58세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때 정년을 앞두고 있던 근로자와 한 해 차이로 혜택을 못 받은 근로자 간 5년 또는 2년의 ‘갭’이 생겨 형평성 논란이 많았다. 일본의 경우는 65세 고용 확보 조치를 의무화를 하면서도 실제 대상 근로자 연령을 1년씩 상향해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올리도록 단계적 접근 방법을 취했다. 우리도 참고해야 할 부분이다.

Q. 정년 연장과 함께 국민연금, 고용보험 같은 사회 보장 체계도 바뀌어야 할 텐데. 의무 납입 연령을 늦추고 혜택을 줄이면 거부감이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면 좋겠나.

A. 지속 가능한 연금개혁이 되려면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랫동안 연금을 납입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고령자가 보다 오래 일하고 더 오래 연금을 적립할 수 있다면 연금개혁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직장에서 은퇴하는 연령과 연금 수급 가능 연령을 맞추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4호 (2024.11.13~2024.11.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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