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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 (일)

이슈 증시와 세계경제

[벼랑 끝 韓증시]② 밸류업 위한 상법·세법 개정안은 국회서 막혀 있고, 큰 그림 그리는 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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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올해 초부터 한국 증시 부양을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거론되는 주주환원 강화만으론 기업가치가 올라갈 수 없다는 목소리가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이들은 정부·여당이 내세우는 ‘당근’인 세법 개정과 야당이 들고 나온 ‘채찍’인 상법 개정이 모두 통과됨은 물론, 재계의 반발까지 고려해 경영권 방어 조항 등도 이참에 입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대수술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 대립으로 또 입씨름만 하다가 끝나지 않겠느냐는 비관론이 일고 있다.

조선비즈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등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동료 의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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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與野, 기업-주주 ‘이해상충’ 해소 동의하지만…

15일 금융투자업계와 국회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연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전날 오전 10시 30분 의원총회를 열고 관련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 개정안대로라면 이사들은 모든 경영 결정을 내릴 때 주주 각각의 이익과 손실을 따져봐야 한다. 개인 투자자, 이른바 ‘개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 정부도 올해 3월부터 같은 취지의 상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었다. 연초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거래소를 찾아 “이사회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것이 계기다. 경영진의 주주에 대한 이해 상충 해소가 한국 증시를 띄울 수 있는 핵심 요소라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는 의미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주주가 손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고 있다”면서 “충실의무와 관련해 회사와 이사의 위임 관계를 전제로 한 현행 법체계를 해치지 않고 배임죄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면서도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대안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부작용 더 크다” 재계 반발에 대립각 커져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현재는 “외국계 헤지펀드 같은 투기 세력이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해 상법 대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상태다. 충실 의무 대상 확대를 상법에 담으면 모든 기업에 적용되지만, 자본시장법을 통해 개정하면 증시 상장 기업으로 대상이 축소된다.

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표가 상법 개정 추진 의지를 보인 다음 날인 5일 “(주주 보호를 위한) 최선인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주주에는 다양한 주체가 있을 수 있는데 헤지펀드들이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재차 밝혔다.

재계에선 소액주주 보호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나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8개 경제단체는 지난달 성명을 통해 “(상법 개정은) 기업의 과감한 경영 판단을 지연시키고 투기 자본의 경영권 공격을 유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춘 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법으로 규율하기보다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 주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게 부작용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상법 개정안은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국민의힘 반대에도 단독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 반발이 만만치 않아 충돌이 예상된다. 상법 개정안은 20대, 21대 국회에서도 논의됐으나 재계의 반발에 부딪혀 모두 폐기된 바 있다.

◇ “재계 입장 고려해 경영권 방어조항까지 한 테이블 놓고 논의해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사 충실 의무 확대를 담은 상법 개정안 하나만 놓고 논의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참에 우리나라 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규제를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손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례로 재계는 쪼개기 상장이나 주가 억누르기가 일어나는 배경 중 하나로 취약한 지배구조를 꼽는다. LG그룹이 LG에너지솔루션을 분할 상장한 것은 LG화학이 자금 조달에 나설 경우 지분율이 희석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지배력이 흔들릴 수 있어 분할 상장을 택했다는 것이다. 주가 억누르기 또한 상속세나 증여세를 줄이기 위한 수단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쪼개기 상장’이 문제라면 경영권 방어 조항을 도입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지, 이렇게 주주와 회사의 이익을 구분한 입법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세법 개정도 여야 입장 차이가 큰 것은 마찬가지다. 현재 정부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줄이고, 자녀 한 명당 받을 수 있는 상속세 공제 금액을 현행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높이는 내용이 담긴 세법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인데 논의는 전혀 진척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세법 개정안이 부자 감세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업들에 밸류업 프로그램 동참을 유인할 만한 세제 인센티브는 국회에 계류된 지 오래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밸류업 공시 기업에 ▲주주 환원 증가 금액 법인세 5% 세액공제 ▲투자자 배당 증가 금액 저율 분리과세 ▲상속세 관련 최대 주주 할증 평가 폐지 등 세제 혜택을 제시한 바 있다.

박성욱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상속받는 기업인은 상속세 부담 때문에 지분 매각이나 주식담보 대출을 통해 상속세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투자 보류, 고용 불안, 지배구조 불안 등을 야기해 기업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됐던 규제를 모두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계속 활력이 떨어지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와 관련한 고민을 정부 쪽에서는 아무도 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정민하 기자(mi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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