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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인터뷰] ‘반도체 패키징 자재 1위’…아버지와 딸이 49년 ‘한우물’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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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페코텍 이향이(사진 오른쪽) 대표가 대만의 OSTA업체인 SPIL에서 최고업체에 주는 상을 수상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출처=페코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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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필러리(Capillary)는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제품입니다.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야 인정받죠.”

반도체 정밀자재 전문업체인 페코텍 이향이(사진 오른쪽) 대표가 말했다. 반도체 부품 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그는 매경닷컴과 가진 첫 인터뷰 내내 자신감이 넘쳤다. 현재 페코텍이 세계 캐필러리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자신감의 배경이다.

물론 그냥 얻은 타이틀이 아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49년 동안 캐필러리란 한 우물을 팠고,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결단이 필요한 순간 과감히 밀어부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모토로라 출신이세요. 와이어 본딩을 담당하셨죠. 가내수공업 형태로 작업을 하셔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어깨 너머로 늘 지켜본 것이 캐필러리였어요.”

캐필러리는 반도체 후공정인 패키징 과정에서 와이어 본딩 작업에 필요한 본딩 도구다. 캐필러리를 통해 본딩 와이어를 반도체 칩에 연결한다. 때문에 캐필러리의 디자인과 품질은 본딩 와이어 위치의 정확성과 반도체 칩 연결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와이어 본딩은 바느질과 비슷한 작업이에요. 금속 와이어가 실이고, 캐필러리가 바늘인 셈이죠. 이 때 와이어의 굵기가 머리카락의 5분의 1에 불과합니다. 그런 와이어를 캐필러리의 가운데로 통과시켜 반도체 칩에 연결하는 거죠. 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할수록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려면 캐필러리는 더 정밀해져야하고, 품질 역시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고객사마다 요구하는 캐필러리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얼마나 ‘고객 맞춤형’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역시 관건이다.

이 대표는 이와 관련 2008년 대만 ASE와 첫 거래를 시작할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고 했다. ASE는 세계 1위 패키징·테스트 전문 기업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인 대만 TSMC와 함께 최근 AI 반도체 패키징 물량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서로 다른 기업 CEO 4명이 면접을 봤어요. ASE 측에서 원하는 캐필러리가 당시 저희 측엔 없었어요. 아직 해당 기술을 보유하지 않았죠. 하지만 무조건 만들어내겠다고 어필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모든 기업을 다 수소문해 샘플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2009년부터 ASE에 캐필러리를 납품하게 됐지요.”

당시 골드 와이어에서 구리 와이어 시대로 넘어가며 원가절감이 중요해진 것을 간파한 이 대표는 이에 맞는 캐필러리 기술 개발에도 성공, ASE 일감을 100% 따냈다.

여성 CEO로서의 섬세함과 꼼꼼함 역시 일조했다. 일례로 ASE와의 거래에서 납기일을 한번도 어기지 않은 것은 물론 대만 엔지니어를 고용해 현지에서 완벽하게 서비스 대응을 한 것. 아예 ASE 반도체 라인에 들어가 해당 작업 담당자가 장비를 바로 조작가능하도록 세팅을 해주며, 기술적인 레포트 작성까지 해줌으로써 ASE 측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대표는 “보안이 굉장히 중요한 업계에서 자신들의 반도체 라인을, 그것도 다른 나라 기업에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그만큼 우리와의 신뢰가 돈독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페코텍은 ASE로부터 최고의 공급자상을 8년 연속 수상한 것은 물론, 매년 협력업체 시상식 자리에서 ASE측은 유럽, 이스라엘 등 각국의 최고 기업인들만 앉는 VVIP 자리에 이 대표가 앉도록 하고 있다.

최근 고대역폭 메모리(HBM)이 각광받으며 이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패키지 공정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패키징 공정을 기술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부문이라고 여겨왔던 게 사실이다. 이 대표 역시 이 점이 아쉽다고 했다.

“페코텍의 매출은 9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알아주죠. 국내 기업들은 패키징 공정에 필요한 부품 회사들의 기술력을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해외 기업들과는 비교가 되는 부분이에요.”

다만 SK하이닉스의 경우 페코텍의 기술력을 일찌감치 알아봐줬다. 페코텍은 현재 HBM으로 주도권을 잡은 SK하이닉스에 반도체 압착에 필요한 본딩 툴을 공급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장비업체 한미반도체와 함께 TC(Thermal Compression) 본더를 공동개발해 HBM 제품을 양산하고 있는데, 이 때 페코텍이 TC본더의 툴을 생산 중이다.

이 대표는 “TC본더는 가공을 마친 웨이퍼에 개별 칩을 적층하는데 사용되는 열압착 본딩 장비를 말한다”며 “우리는 HBM이 상용화되기 훨씬 이전인 지난 2010년초반부터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SK하이닉스와 HBM 제조에 필요한 본딩 툴을 개발해왔고 그 결과 SK하이닉스가 현재 사용 중인 HBM 툴은 100% 우리 제품이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밀부품 위주 사업에서 장비사업으로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이 대표는 기술 인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현재 신규 사업 발굴을 통해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하려는 시점이어서 더더욱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다”며 “신규 인재들은 기존의 캐필러리 사업 분야 업무를 바탕으로 노즐, 장비, 바이오, 어드밴스드 패키징 사업 분야 등에서 기술 개발과 공정개선 등의 업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코텍은 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페코마스터시스템(PMS) 제도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회사 내에서 경험이 많고 기술력이 우수한 인원에게 마스터 칭호를 부여하는 한편, 마스터들은 각 영역별로 담당하는 후배 엔지니어들을 지정해 각 단계별로 필요한 기술을 지도해 빠르게 엔지니어의 기술력을 높일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이 대표는 “저는 페코텍을 한국의 중소기업이라기보단 글로벌 리딩 기업이라고 생각하며 경영하고 있다”며 “이처럼 도전과 혁신의 정신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인재라면 언제든지 페코텍에 도전해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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