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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명태균의 예지력과 여론조사 ‘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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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주술사는 주문과 술법으로 재앙을 면하게 하는 사람인데, 우리나라에선 미래를 맞히는 점쟁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는 질문에 포함된 의뢰인의 욕망을 읽고, 그것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해 위안과 희망을 주는 전형적인 점쟁이 수법을 썼다. 2021년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이 젊은 여자와 떠나는 꿈을 꿨다”고 말하자 “윤석열을 국가와 국민에게 5년 동안 떠나보내는 꿈이다. 당선되는 꿈”이라고 해몽해줬다. 김 여사와의 첫 만남 때 명씨가 말했다는 ‘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 비유 역시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은 김 여사의 마음을 꿰뚫어 본 심리적 부적이었다.

‘점쟁이 수법’으로 대통령 부부의 신뢰를 확보한 명씨의 조언은 대선 캠프 대변인 전격 교체와 ‘친박’ 윤상현 의원 복당 및 요직 기용을 비롯한 선거전략의 큰 틀을 짜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또 윤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지인과의 통화에서 “청와대 가면 뒈진다”고 경고했다고 말했고, 대통령실 내 ‘윤핵관’ 라인 축출에 이어, 영국 여왕 조문 불참, 캄보디아 방문 당시 퍼스트레이디 단체 일정 불참에 이르기까지 실제 국정에 영향을 줬고, 공천 개입과 창원국가산업단지 ‘청부’ 개발로 이어졌다는 의혹이 쌓이고 있다.

명씨가 기존 주술사와 다른 점은 고도로 현대적인 술법을 썼다는 것이다. 욕망에 부합하는 듣기 좋은 말이 명씨가 외운 주문이었다면, 술법은 여론조사였다. 명씨가 2등을 1등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평가가 국민의힘 내부에 파다했다. 명씨 자신도 인정했다. “10년 동안 놀고 있는 오세훈이 현직 국회의원, 전직 국회의원, 현역 시의원 한명 없었는데 어떻게 (서울시장이) 됐을까요? (중략) 이준석 대표도 (당대표 선거에서) 자기가 1등 된다고 생각했겠어요? 그래서 이준석 당대표 만들고 나서 대통령 만드는 게 별거 아니에요. 제일 쉬워요, 대통령이.”(시비에스 노컷뉴스 인터뷰)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 내부 경선에서 명씨가 당원들의 지지 성향을 파악해 여론조사에 활용했다는 의혹 보도가 나왔고,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해 윤 대통령을 1위로 만들었다는 증거가 확인되기도 했다. 명씨가 자랑하는 예지력의 실체는 불법을 동원한 여론조사였던 셈이다.

검찰이 지난 11일 명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공천 개입과 여론조사 관련 혐의를 뺐다. 의혹의 핵심을 피해 간 것이다. 검찰도 명씨의 주술에 걸린 것인가.

이재성 논설위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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