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 문제에 “육영수 여사도…” 비교
트럼프 관계 도울 미국인 일일이 거명
공감 어려운 인식ㆍ행태 반복 신뢰 훼손
트럼프 관계 도울 미국인 일일이 거명
공감 어려운 인식ㆍ행태 반복 신뢰 훼손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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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윤석열 대통령의 성심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종종 드러내는 다소 이상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인식과 행동들을 접하다 보면, 그로부터 비롯되는 당혹감이 부지불식간에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적잖이 훼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기자회견에서도 윤 대통령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는 인식을 다시 한번 드러냈는데, 그건 검건희 여사 두둔을 위해 고 육영수 여사를 호출한 부분이다. 육 여사는 고 박정희 대통령 부인으로 지금도 국민적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퍼스트레이디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국정 개입 논란과 관련, “과거 육영수 여사도 ‘청와대 야당’을 했다고 하는데, 대통령의 부인이,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서 정치를 잘할 수 있게, 아내로서 한 조언 같은 것들을 마치 국정농단화시키는 것은 정말 맞지 않는 거라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문제들이, 과거 육 여사가 박 대통령에게 했던 ‘청와대 야당’ 역할과 같은 걸로 치부하지만 둘 사이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육 여사가 베갯머리에서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가감 없이 전한 일화는 많다. 하지만 육 여사는 국회의원 공천 같은 문제에 함부로 나서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그런 문제를 일개 정치 브로커 정도의 인물과 시시콜콜 협의하고 나중에 그게 폭로돼 대통령을 곤경에 빠트린 적은 더더욱 없다. 상식적으로도 금방 알 수 있는 큰 차이를 무시한 채 둘을 ‘대통령에 대해 아내로서 한 조언’이라고 같은 것처럼 얼버무리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것이다.
기자회견에선 대통령의 공식발언으론 아무래도 적절치 않은 것 아닌가 하는 답변도 불거졌다. “트럼프 당선자와 우정을 어떻게 다져나갈 것인가. 또 양국 관계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인가” 하는 한 외국 언론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다. 공식석상인 만큼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국제사회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같다.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의 우정을 돈독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동맹에 기반한 두 나라 사이의 역사적 우정과 신뢰로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해 나갈 것이다’는 정도의 대답을 기대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상원의원, 주지사,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이름까지 일일이 거명했다. 그러고 그런 사람들이 “윤 대통령과 트럼프가 ‘케미’가 맞을 것이라고 했다”느니, 그런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다리를 잘 놔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잘 묶어주겠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러니까 별문제없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미국 대선 개표 중에 윤 대통령과 잘 아는 미국쪽 인사가 트럼프와 통화가 가능한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 알려줬다는 얘기까지 덧붙였다. 어느 정도 케미가 절실하다고는 해도, 그런 답변은 마치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 사람 저 사람 다리를 놔야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친해질 수 있다는 얘기처럼 들려 당혹스럽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윤 대통령의 답변이 그대로 실려 각국 정상들이 보게 된다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 중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설과 관련한 질문에 “‘선공후사(先公後私)’로 문제를 풀어갈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김 여사 문제를 ‘대통령에 대한 아내로서의 조언’으로 애써 인식하는 대목에선 공(公)과 사(私)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 것 같고, 트럼프와의 우정에 관한 답변에선 공식(formal)과 비공식(informal)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완전히 틀린 건 아니라도, 어딘가 이상하고 어긋난 것들의 누적이 윤 대통령에 대한 신뢰 훼손에 적잖이 작용한 게 아닌지 돌아보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실장 직대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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