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떨어진 전쟁' 참전하는 북한군 심리 분석
"암울한 고향 생활·세뇌당한 충성심이 동력"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에 지난 8월 '쿠르스크 108㎞'라고 적힌 표지판이 서 있다. 러시아 접경지 쿠르스크에는 북한군 1만1,000명가량이 주둔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미=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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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밥은 (북한 군대보다) 더 맛있지 않을까요?"
한 북한군 출신 탈북자가 '러시아 파병' 질문에 내놓은 반문이다. 그는 북한군 시절 자신이라면 감사한 마음으로 파병에 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고도 타국의 전쟁에 기꺼이 나설 만큼 북한 내부 상황이 열악하다는 얘기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러시아의 전쟁 목표에 대한 공감대가 없지만 참전할 동기는 존재한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짚었다. 고향에서의 암담한 생활과 오랜 기간 세뇌당한 충성심이면 전장에 나설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명예롭게 죽거나, 영웅으로 돌아오거나"
WSJ는 10일(현지시간) '북한 군인들이 러시아에서 죽을 각오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는 북한군이 머나먼 타지에서 낯선 목적의 전쟁에 얼마나 투지를 품을 수 있는지"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북한군이 러시아의 전쟁 목표는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자국 상황으로 인해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이 WSJ의 분석이다. 북한군 복무 경험이 있는 탈북자 3명과의 인터뷰가 토대가 됐다.
열악한 북한 상황은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2019년 탈북한 북한군 출신 류성현(28)씨는 자신이 복무 당시 러시아군과 싸우도록 명령을 받았다고 해도 즉시 "감사하다"고 답했을 것이라고 WSJ에 말했다. 이유로는 북한군의 '형편없는 식사'가 첫손에 꼽혔다. 류씨는 군인 시절 옥수수 섞인 으깬 밥을 먹었고, 고기는 명절 특식으로나 나왔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북한의 식량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세계식량계획(WFP) 등 유엔 기구 5곳이 지난해 7월 공동 발표한 '2023 세계 식량 안보 및 영양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2년 북한 주민 45.5%(1,180만 명)는 영양실조 상태였다. WSJ는 "북한군 다수가 얼마나 암울한 고향의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지는 곧잘 간과된다"고 짚었다.
우크라이나 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지난달 18일 공개한 영상의 한 장면으로,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러시아 보급품을 수령하고 있다. 줄을 선 군인들의 체격이 왜소한 점이 주목을 끌었다. SPRAVDI 엑스(X)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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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된 '충성심'도 중요한 동기라고 탈북자들은 입을 모았다. 류씨는 "북한 군인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약 10년 전 탈북한 북한 특수부대 '폭풍군단' 출신 이현승(39)씨도 "군 복무 시절 김 위원장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하도록 매일 이념 훈련을 받았다"며 "그들(북한군)은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희생될지도 모르지만 지도자의 러시아행 명령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결국 북한군 다수는 러시아 파병을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느낄 것이라는 설명이다. 30년간 북한군 장교로 복무하다 1998년 탈북한 심주일(74)씨도 "해외 파병은 군인의 지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WSJ는 "(북한 주민은) 어린 나이부터 국가 지도자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도록 세뇌당한다"며 "파병은 김정은 정권에 돈과 영광을 안겨줄 일생일대의 기회로 여겨질 것이다. 전사하면 명예를 얻고, 살아남으면 영웅으로 귀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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