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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과학계는 왜 ‘트럼프 2기’ 우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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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내년 초 출범하는 트럼프 2기 시대의 미국 과학 정책에 대한 과학자들의 우려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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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이라는 긴 인생 동안...이보다 더 슬펐던 날은 거의 없었다.”



201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프레이저 스토다트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지난 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가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이렇게 말했다. 앞서 미국 노벨상 수상자 82명은 선거 직전에 발표한 공동서한을 통해 “트럼프의 당선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늦추며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을 방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폴란드 크라쿠프 야기엘로니안대의 그라지나 야시엔스카 교수(장수학)는 “낙관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세계 과학과 공중보건에 긍정적인 측면을 찾기가 어렵다”며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학술지의 양대산맥인 네이처, 사이언스를 비롯한 과학 언론들이 내년 초 출범하는 트럼프 2기 시대의 미국 과학 정책에 대한 과학자들의 우려 섞인 시선을 전하는 사설과 기사를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과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기후변화에 관한 트럼프의 정책 노선이다. 지난 집권 시절(2017∼2021) 기후변화를 “역대 최악의 사기 중 하나”라며 미국의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한 그는 재집권하면 이 정책을 이어갈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는 세계가 합의한 온실가스 배출량과 목표 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걸 뜻한다. 파리기후협정은 지구 온난화 수준을 산업화 이전보다 1.5~2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계 2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의 탈퇴는 온실가스 배출 1위인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조지타운대 조애나 루이스 교수는 ”2020년대는 기후 행동에서 중요한 10년이며 트럼프가 4년 더 집권하면 기후 행동에는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 대대적인 재생 에너지 투자를 주축으로 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표적인 기후법인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전기차와 대중교통을 장려하는 예산도 삭감하겠다는 입장이다. 전기차 지원은 미국인의 일자리를 줄이고 중국에 미국 자동차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반면 온실가스 배출의 중심축인 석유를 ‘액체 금’이라고 부르며 생산을 늘리겠다고 다짐했다.



네이처는 그럼에도 정책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미국의 점진적인 청정에너지 전환을 막을 가능성은 낮게 본다고 전했다. 예컨대 트럼프의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하더라도 인플레이션 감축법 투자의 혜택을 이미 받고 있는 공화당 지역의 기업들은 이를 되돌리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인공지능 윤리를 강조하는 규제 정책도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2023년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 행정명령을 철회하겠다는 방침을 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인공지능의 안전과 보안에 대한 새로운 표준을 제정하고 사생활 보호를 포함한 시민들의 권리를 증진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트럼프의 약속은 행정명령이 인공지능 혁신을 방해한다고 비판하는 공화당의 입장과 일치한다. 네이처는 “행정명령은 대통령이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기 때문에 트럼프는 백악관에 들어가자마 이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봤다.



브라운대 수레쉬 벤카타수브라바니안 교수(기술책임, 재구상,재설계센터 소장)는 대신 외부 규제를 통하지 않고 기업 스스로 인공지능 안전 문제에 대한 조처를 취하도록 강조점이 옮겨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효율성위원회를 신설해 기업인 일론 머스크에게 맡길 것이라고 밝힌 트럼프의 방침과 일맥상통한다. 루이빌대 로만 얌폴스키 교수(컴퓨터과학)는 “고급 인공지능 시스템 훈련에 대한 규제를 없애는 것은 미국 국민과 세계의 안전에는 가장 나쁜 일”이라고 말했다.



과학 대중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관측통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때 환경보호청(EPA), 에너지부, 해양대기청(NOAA), 미 항공우주국(NASA) 등 기후 연구를 담당하는 기관의 최고 자리에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을 임명한 패턴을 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당시 그가 기후과학 부문 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을 추진하자 수백명의 연방 과학자가 정부를 떠났고 일부는 아예 미국을 떠났다.



공중보건 정책에서도 후퇴가 예상된다. 그는 이번 대선 선거운동 기간 중 백신의 효과를 부정해온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에게 행정부에서 큰 역할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처는 “트럼프가 보건복지부를 케네디에게 맡길지, 미국 상원이 이를 승인할지는 알 수 없지만 케네디가 보건 문제에 관해 트럼프의 귀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사이언스는 ‘점검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미국인 중 코로나19 백신 거부자가 20%에 이르는 점을 사례로 들어 ”주로 정치적 이득을 위해 진실을 훼손하려는 사람들이 과학을 공격하지만, 이는 과학에 대한 신뢰가 감소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며 “이러한 공격으로부터 과학을 보호할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세계 보건 프로그램의 최대 자금줄이다. 그러나 에제키엘 엠마누엘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생명윤리)는 트럼프의 고립주의와 세계보건기구를 비판한 과거 발언을 고려할 때 그의 두번째 임기 동안 세계 보건에 대한 지원이 크게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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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중심 기술 육성 정책에 따라 과학 분야에서의 국제 협력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오사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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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분야 국제 협력도 퇴보할 듯







과학 분야에서의 국제 협력도 퇴보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첫 임기 동안 테러리즘 위협을 내세워 이슬람 국가를 주축으로 한 10여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국가 안보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중국 이니셔티브’라는 반간첩 프로그램을 시행해 중국계 과학자들을 체포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런 조처들은 사라졌으나 미국 하원은 지난 9월 ‘중국 이니셔티브’를 부활하는 법안을 다시 발의한 상태다. 트럼프 2기에서 중국 이니셔티브가 부활될지는 현재로선 불분명하다.



네이처는 그러나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여행 금지나 외국 연구자와 학생에 대한 비자 단속 조처는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네이처는 다만 미-중 과학 협력을 규정하는 중요한 협정은 트럼프의 취임식 직전에 서명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사이언스는 “일부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반중국 감정을 이용해 동맹국들과의 국제적 과학 협력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트럼프 2기도 1기에 이어 자국 중심 기술 육성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므로 한-미 과학기술 교류도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다.



네이처는 사설을 통해 “미국에는 증거를 존중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새 행정부는 이 원칙을 구현해야 하며 그것이 부족하면 연구자들을 대신해 우리가 책임을 묻겠다”고 다짐했다.



네이처는 연구자들에 대해서도 “용기와 끈기, 단결로 새로운 행정부와 교류하라”며 “동시에 미국 과학자들은 혼자가 아닌 글로벌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다가올 도전에 함께 굳세게 맞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네이처가 콕 집어 강조한 과학자의 자세는 ‘권력을 향해 계속해서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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