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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잘 드는 칼을 만드는 작업과 비슷하다. 날의 모양을 만든 뒤 풀무질을 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쇠막대기를 두드려 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물에 담금질을 하고 앞의 과정을 수백, 수천번 반복한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대장장이가 자신의 칼을 연마하듯 배우는 자신의 연기를 갈고 닦는다. 인내와 꾸준함이 필수다.
2004년 영화 ‘아는 여자’로 은행 강도 1역으로 충무로에 입성한 후 조·단역을 거쳐 주연에 이르기까지 영화만 총 46편에 이른다. 덕분일까. 류승룡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7번방의 선물(2013)’, ‘명량(2014)’, ‘극한직업(2019)’까지 1000만 영화를 4편이나 보유한 흥행 배우로 불린다. 누구보다 뜨겁고 치열하게 살았다.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배우 류승룡은 마치 솜씨 좋은 대장장이처럼 스스로 채찍질하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는 창간 19주년을 맞이해 류승룡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존 활명수’로 극장 문을 다시금 두드린 류승룡. 그가 돌아본 20년과 앞으로 꿈꾸는 1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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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충무로에 들어선지 20년이 됐다. 극단 경력까지 포함하면 30년 넘게 한 우물을 팠다. 소감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먼저 장진 감독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연극 인연으로 오디션과 프로필 사진 1장 없이 ‘아는 여자’에 출연하게 됐다. 영화 자체가 제 오디션이 됐고, 제 프로필이 됐으니 감독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또 이야기꾼이 많은 이 나라에서 배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 아닌가 싶다. 돌아보면 20년 동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촬영 현장의 분위기나 책임감 등도 다를텐데.
“극한직업 이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시간도 내 인생이다. 현장에서 보내는 6∼7개월을 ‘없어도 되는 시간이 아닌,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자’라고. 이젠 꼭 지켜야 하는 저와의 약속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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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이제 현장에서 스태프·배우를 통틀어 연차가 가장 높거나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저일 때가 있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겠는가? 불평불만 하지 않고, 자기 자랑하지 않고, 나보다 다른 사람이 기분 좋은 선택을 하도록 하고,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고,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는 하고. 그러면서도 주연배우니까 민첩하고 적절하게 현장 전체를 보는 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실 말처럼 쉽진 않다(웃음).”
-그야말로 베테랑 대열에 올랐다. 연기적인 고민이 있을 땐 어떻게 해결하는지.
“저는 고민을 짧고 굵게 한다. 생각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우유부단해지고, 가려는 길이 모호해지는 경우도 있다. 첫 느낌을 믿고 쭉 간다.”
-흥행 타율에 비해 상복이 없다는 말도 있다. 서운하진 않나.
“전혀. 언젠가부터 그런 것에 의연해지고 있다. 작년에 선보인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이 상을 많이 받기도 했고, 10년 전에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7번방의 선물로 영화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었다. 상을 받으려고 1000만 관객을 모으려는 건 아니기 때문에 흥행과 수상을 연결해 생각하고 있진 않다.”
-오랜 시간 한 길만 걸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을까.
“1986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연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극으로 치료한 느낌이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마음을 딱 잡고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이 생긴 셈이다. 스트레스 해소도 하고 꿈과 목적·성취감도 생기고. 그렇게 입학한 학교(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은사님이신 김효경 교수님이 ‘너는 늦게 피는 꽃이야. 조급해하지 마’라는 말씀해 주셨는데 그게 날 붙잡은 원동력이 됐다. 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찍을 때 이준익 감독님께 ‘캐릭터를 너무 소모하는 것 같다’는 고민을 말씀드렸는데, 감독님이 ‘땅을 깊게 파면 손은 아프지만 깨끗한 물이 나와’라고 말씀하셨다. 아직도 감독님이 걸으시며 말씀하시던 그 날 새벽 문경의 밤공기가 생생하다. 그 말을 듣고 ‘최종병기 활’, ‘내 아내의 모든 것’, ‘7번방의 선물’ 등을 끝까지 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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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20년 동안 하다보면 힘든 순간도 있을텐데.
“그렇다. 그런데 저는 다행히 스트레스가 아니라 설레임으로 다가오는 일이 더 많았다. 제가 싫증을 잘 낸다. 그런데 이 직업을 정해진 기간동안 한 작품·하나의 캐릭터를 집중해서 만들고, 또 다른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든다. 매번 재밌는 기대감을 갖고 살 수 있으니 나같은 사람은 얼마나 좋겠나.”
-모든 역할을 소화하고 있지만, 특히 ‘짠내나는 가장’ 역할은 대한민국 1등인 거 같다.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 류승룡의 모습이기도 하다.
“친근함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실제로도 옆집 아저씨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 역할을 많이 하기도 했고(웃음).”
-작품을 고를 때 가장 크게 신경쓰는 부분은?
“저는 관객분들에게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다.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건강한 웃음을 드리고 싶다. 그래서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제가 선택한 작품을 살펴보니 공감과 위로에 초점이 맞춰져 있더라. 스타일리시하고 감각적인, 말초신경을 건드는 작품은 많이 나오잖나. 개인적으로 친근하고 편안한, 휴머니즘 쪽이 더 끌린다. 이번에 개봉한 ‘아마존 활명수’도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린다.”
-20년의 시간을 돌아봤다. 10년 뒤 류승룡은 어떤 배우가 되어있을까.
“연기는 정말 어렵다. 배우는 감정을 세공한다. 아마 시간이 흘러 뭔가를 이뤄냈다기보다 계속해내는 과정에 있을 것 같다. 10년 뒤에는 ‘성장’보다는 ‘성숙’한 사람이자 배우가 돼서 조금 더 세상도 거시적으로 그려내고 싶다. 세상과 마음을 읽어내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까지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이 이 일을 하고 싶다. 굳이 바라는 게 있다면 조금 더 다양한 작품들에 국한되지 않고, 스펙트럼을 더 넓히고 싶은 욕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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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 스포츠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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