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한국원자력硏 가보니
반도체 수출, 내방사선성 평가 필수… 하반기 들어 가동 8→24시간 늘려
美 등 세계 각국서 자국 사용 우선… “경쟁력 보강 위해 시설 확대 시급”
경북 경주시에 있는 양성자 가속기(KOMAC)의 내부 모습이다. 아주 작은 입자인 양성자는 길게 이어져 있는 원형 터널을 지나면서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 양성자 혹은 중성자를 이용해 실험하는 곳이다. 오른쪽 끝에 가속된 입자가 반도체 등 표적에 충돌하면 전자 장비의 안전성과 취약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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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미 우선주의 강화 속에 세계 각국 양성자가속기들이 다른 나라에 문을 닫을지 모릅니다. 국내 반도체 기업에 타격이 될 수 있죠.”
8일 경북 경주시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가속기(KOMAC) 운영 시설에서 만난 이재상 양성자과학연구단장은 “반도체 ‘내(耐)방사선성(방사선에 저항하는 성질)’ 평가에 양성자가속기가 필수적인데, 일본은 이미 국내 기업의 평가를 막았고, 미국도 점점 문을 닫는 추세”라며 이같이 말했다.
양성자가속기는 아주 작은 입자인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물질과 충돌시키는 대형 시설이다. 가속된 양성자를 반도체에 충돌시키면 우주방사선 및 대기방사선이 일으키는 오작동을 확인할 수 있다. 반도체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성자가속기 등을 이용한 내방사선성 평가를 거쳐야 한다. 미 우선주의와 경제 안보 확산 속에 양성자가속기 이용마저 ‘자국 기업이 먼저’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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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성자가속기는 국내에서 대전 연구용원자로 ‘하나로’와 더불어 산업용 반도체의 내방사선성 시험 국제표준에 등재된 시설이다. 국내에 몇 없는 시설인 데다 최근 인공지능(AI)의 영향으로 반도체의 수요가 늘고 있어 양성자가속기의 평균 연간 가동률은 96%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1∼6월) 양성자가속기 사용 신청 경쟁률은 4 대 1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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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가 늘어나자 경주 양성자가속기는 올해 하반기(7∼12월) 가동 시간을 8시간에서 24시간으로 대폭 늘렸다. 국내 기업의 안정적인 내방사선성 평가를 위해 출력 세기도 높일 계획이다. 문제는 출력이다. 현재 경주 양성자가속기의 최대 출력은 100MeV(메가 전자볼트)로, 반도체 납품을 위해 필요한 평가 기준인 200MeV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국내에서 사전 테스트를 진행하고 성공 가능성이 있는 제품은 다시 미국, 캐나다, 영국 등지에 있는 양성자가속기로 보내야 한다. 이 단장은 “(200MeV로) 시설 확대에 필요한 예산은 약 2500억 원 수준으로 2028년에는 사업이 시작돼야 국내 수요를 맞추고 국내에서 테스트를 완료할 수 있다”고 했다.
양성자가속기의 또 다른 역할은 위성 등 우주로 올라가는 전자 장비 검사다. 지상보다 훨씬 혹독한 환경인 우주에서 위성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고, 우주방사선에 취약한 부분을 찾는 것이다. 실제 우주에서 오작동을 일으키는 원인의 약 30%는 우주방사선의 영향이라고 알려져 있다. 2022년 스페이스X가 쏘아올린 스타링크 위성 49기 중 40기가 지구로 떨어진 사건 역시 강한 우주방사선이 원인이었다.
시장 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항공우주 부품 제조 시장은 2030년까지 1조2332억 달러(약 1726조 원)까지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단장은 “민간 우주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치고 나가려면 안전 검사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곳이 필요하다”며 “시간이 늦어지면 반도체나 우주 패권 경쟁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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