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올랜도 쉐러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 부단장
올랜도 쉐러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 부단장(UNIST 특훈교수)과 그의 연구실 제자들의 모습 /사진=박건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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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대에 설 과학자에겐 '자기 자랑'이 필수입니다. 전 세계 여러 기관의 투자금을 왜 내 연구에 써야 하는지 설득해야죠. 세계적 연구자는 훌륭한 발표자이기도 합니다. 한국이 과학을 얼마나 잘하는지, 끊임없이 뽐내세요."
8일 울산 울주군 UNIST(유니스트) 연구동에서 만난 올랜도 쉐러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 부단장(UNIST 특훈교수)의 조언이다.
쉐러 부단장은 DNA의 손상·복구 메커니즘을 분석해 암세포를 표적 치료하는 유전체 안정성 연구의 대가다. 스위스연방공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화학생물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로테르담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캠퍼스에서 교수를 지냈다. 8년 전 IBS 연구단의 부단장에 임명돼 한국에 왔다. 유럽, 북미, 아시아 4개국의 서로 다른 연구·교육 환경을 몸소 경험한 셈이다.
2017년 그가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동료들은 하나같이 "왜 한국에 가냐"고 물었다. 쉐러 부단장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에 어떤 연구자가 있으며 연구 환경이 어떤지 정말 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연구자로서 8년을 지내며 쉐러 부단장은 한국 과학계에 대해 "연구자의 수준이 높고 뭔가 해내려는 의지도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한국에 가서 연구하거나, 한국 연구기관·대학과 공동연구를 할 것을 적극 추천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다만 연구계 역시 이른바 '네트워크'가 중심이 되는 만큼 입소문을 타야 국제 공동연구의 '인기 파트너'로 부상하는데, 아직 한국의 숙제는 많다. 쉐러 부단장은 "국제 학회에 열심히 참석해 마음껏 연구 성과를 자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연구원을 지도해 온 그는 모든 제자가 최소 한 번은 국제학회에서 연구 내용을 발표하도록 했다. 연구실 소속 학생들은 꾸준히 영어 말하기를 연습하고, 자연스러운 발표법과 매너를 익혔다. 그는 "내가 얼마나 중요한 연구를 잘하고 있는지 여러 국가의 연구자들에게 여실히 보여주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연구실에 앉아 있는 올랜도 쉐러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 부단장 /사진=박건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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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발표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쉐러 부단장은 "과학자는 연구에만 치중하는 사람이 아니라, 과학이 왜 필요한지 사회에 알리는 사람이기도 하다"며 "재화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자신의 연구가 왜 '좋은 과학'인지를 설득하는 능력이 필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제 공동연구를 확대하기 위해 개별 연구자의 영어 구사력과 발표력을 높이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같은 훈련 덕분에 제자 중 상당수가 미국 하버드대, 록펠러대 등 유수 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 자리를 얻는 데 성공했다.
또 "국가 R&D(연구·개발) 연구제안서 심사 시 진행되는 동료 평가(peer review)를 다양한 국적의 학자로부터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지금은 평가자도, 피평가자도 한국인인 경우가 대다수인데, 이를 다양화하라는 주문이다. 그는 "한국 과학의 국제적 가시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학자를 늘리는 게 목표라면, R&D 평가를 영어로 진행하는 게 필수"라고 했다.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가 모두 공용어인 스위스도 연구 제안서만큼은 국제 표준을 위해 영어로 제출하도록 한다고도 덧붙였다.
쉐러 부단장은 11월 중순, 한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암 연구의 중심지로 꼽히는 미국 UPMC 힐만 암센터의 프로그램장으로 부임한다. 외부 환경에 의해 손상 입은 DNA를 세포가 스스로 복구하는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암 발생의 근본 원인과 치료 방법을 연구할 계획이다. UNIST 및 IBS 연구팀과의 교류는 미국에서도 이어진다. 쉐러 부단장은 "한국 연구팀과 핵심 연구를 진행해 온 만큼, 앞으로도 활발하게 연구 결과를 공유할 것"이라고 전했다.
울산=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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