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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공공예식장 절반이 '실적 제로'인데, 되레 숫자 늘린 정부 [視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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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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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예식장은 가성비가 좋지만 실적은 형편없다.[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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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도보 5분 거리, 300명 수용 가능한 공간, 주차공간 완비, 주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대관, 게다가 '무료'. 결혼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지금, 완벽한 예식 장소로 보인다. 이곳은 다름 아닌 A구청의 공공예식장이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이곳에서 진행된 예식은 제로다. 문제는 이런 공공예식장이 수두룩하다는 거다. 왜일까.

지난 15일 오후 5시, 지방 A구청. 공공예식장을 탐방하러 온 취재팀을 맞은 건 공공예식장 전문인력이 아닌 총무과 직원이었다. 7층 대회의실 문을 열자 나무로 만든 무대와 의자 300석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학교 강당 같은 곳, 공공예식장이었다. 직원은 "같은 층에 있는 구내식당도 협의를 통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가격은 0원이었지만 언뜻 둘러봐도 문제가 숱했다. 무엇보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려면 '도시락'을 지참해야 했다. 강당 같은 건조한 대회의실을 예식장답게 꾸미는 것도 결혼하는 이들의 몫이었다. 대회의실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 신부 대기실, 축의금 받는 장소 등 신경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공식 가격은 0원이지만, 이런저런 돈이 필요한 건 민간 예식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대회의실을 공공예식장으로 활용한 포트폴리오를 볼 수도 없었다. "직원에게 이곳을 예식장으로 꾸민 사진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런 건 없다"였다. A구청의 대회의실은 '공공예식장'으로 등록돼 있지만,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단 한건의 결혼식도 열리지 않았다. 비단 A구청만의 일일까. 그렇지 않다.

더스쿠프는 공공예식장의 운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 6월 '청년 맞춤형 예식공간 제공방안'을 통해 발표한 139곳의 공공예식장을 전수조사했다.[※참고: 139곳의 공공예식장 가운데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이하 서울), 매헌시민의 숲, 용산가족공원 그린결혼식, 월드컵공원 소풍결혼식 등 4곳은 제외했다.]

먼저 공공예식 사용료부터 살펴보자. 전국에 분포해 있는 133곳 공공예식장의 평균 사용료는 11만2000원이었다.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 58곳의 공공예식장은 비용이 0원이었다. 표면적으론 '가성비'가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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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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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공공예식장의 실적은 형편없었다. 지난해 공공예식장 83곳에서 치러진 결혼식은 225건이었다. 공공예식장 한곳당 일년에 2.74건의 결혼식만 열린 셈이다. 결혼식이 한건도 열리지 않은 공공예식장은 53.0%에 달했다. 1건의 결혼식이 열린 공공예식장은 13.3%를 기록했다. 0~1건이 전체의 70%에 육박한 셈이다. 실제로 10건 이상을 기록한 공공예식장은 7곳으로 전체의 8.4%에 불과했다.

[※참고: 139곳의 공공예식장 중 올해 신규로 지정한 48곳과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이하 서울), 매헌시민의 숲, 용산가족공원 그린결혼식, 월드컵공원 소풍결혼식 등 4곳은 통계에서 제외했다. 여기에 운영을 중단한 2곳(부천 소향관ㆍ소사홀), 자료가 없다고 밝힌 2곳(경기 너른못ㆍ전남 농업박물관 모정)도 추가로 뺐다. 이에 따라 실적을 판단한 공공예식장의 수는 83곳이었다.]

다만, 이마저도 통계가 만들어낸 '착시'로 봐야 한다. 공공예식장의 실적을 끌어올린 곳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운영 중인 '경기남부지역본부웨딩홀(21건)'과 '남서울본부 강당(15건)'이었는데, 여기에선 지난해까지 LH 직원만 결혼했다. 이를 제외하면 공공예식장의 평균 실적은 2.7건에서 2.3건으로 더 쪼그라든다.

이는 공공예식장에 내건 '저렴한 사용료'가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사용료가 제로인 공공예식장 중 지난해 한건의 결혼식도 열리지 않은 곳은 27곳에 달했다. 32.5% 비중이다. 그렇다면 공공예식장이 결혼하는 이들의 외면을 받은 까닭은 뭘까.

답은 너무나 명확하다. 표면적 사용료만 저렴할 뿐, 결혼하려는 이들이 치러야 하는 비용은 민간 예식장과 다를 바 없어서다. 그렇다고 식사할 공간이 마땅한 것도 아니고, 주차도 애매하다. 결정적인 건 대강당과 대회의실을 꾸며주지도 않은 채 '덜렁 대관'만 해준다는 점이다.[※참고: 이 이야기는 더스쿠프 622호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공공예식장을 운영하는 국립시설이나 공공기관, 지자체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대관 실적이 없는 부산 수영사적공원 관계자는 "식사와 주차가 어려워 코로나19 이후 예식 관련 대관은 한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가장 심각한 건 공공예식장을 총괄하는 컨트럴타워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2012년 '작은 결혼식'을 활성화하겠다면서 공공예식장을 앞세웠던 여성가족부는 2019년 소리소문 없이 사업을 중단했다.

그러던 올해 3월 느닷없이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가 공공예식장 사업을 재개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청년층에게 서비스할 '생활맞춤형서비스'를 찾다가 공공예식장 정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 전까진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개별적으로 공공예식장을 운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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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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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기재부가 '주먹구구식'으로 공공예식장 사업을 펼쳐놨다는 점이다. 실적과 문제점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올해 48개소의 공공예식장을 신규로 추가했다. 현황을 분석하고 내실을 다지긴커녕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했다는 얘기다.

통계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았다. 일례로 '한수원고리본부 홍보관 멀티공연장'은 1988년부터 지역 주민들을 위해 예식장을 개방해왔지만, 기재부는 이를 '신규 공공예식장'으로 등록했다. 경기도 부천시의 '소향관'과 '소사홀'은 운영을 중단했는데 예식장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소향관ㆍ소사홀 관계자는 "공공예식장 명단에서 빼달라고 기재부에 공문을 보낸 상태"라고 설명했다.

기재부와 행안부가 공공예식장 사업을 펼치긴 했지만, 주무부처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공공예식장의 주무부처가 어디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면서 "다만, 기재부와 행안부가 공공예식장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예식장이 숱한 단점을 개선하고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에는 전국 공공예식장 대관 건수를 파악해 대관이 적은 곳을 어떻게 홍보ㆍ활용할 것인지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내년엔 달라진 공공예식장을 기대할 수 있을까.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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