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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토)

[이진우칼럼] 금투세 다음은 상속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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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다이슨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 경이 며칠 전 영국 노동당 정부의 상속세 강화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 소규모 가족기업에 20% 상속세를 물린다는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이다. 재벌이 앞장서 상속세를 비판하는 모습도 생경하지만 문제 삼은 세율이 고작 20%라는 게 놀랍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4일 마침내 금투세 폐지에 동의한다고 밝혀 큰 박수를 받았다. '큰손'뿐 아니라 연 5000만원은커녕 수십, 수백만 원도 벌까 말까 한 대다수 '개미' 투자자들이 환호했다.

당사자가 부자에 국한되지 않는 다는 점에서 상속세도 비슷하다. 기업,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킨다. 비유하자면 악성 만성질환이다. 부자세금이니까 상관없다고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지난 9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외신 인터뷰에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교육열을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해 화제가 됐다. 집값이 오르고, 대출이 늘고, 불평등이 심해지고, 지방 인구가 줄어드는 원인이 지나친 교육열이라는 지적이었다.

이 총재 말마따나 한국에선 부자일수록 자녀 교육에 열심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으며 공을 들인다. 왜 그럴까. 나는 이 문제도 상속세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부자들은 최고세율 50%, 대주주 할증까지 합하면 60%에 달하는 상속세를 감당한다. 그 세금을 내느니 살아생전에 과감한 교육 투자로 자녀에게 좋은 학벌, 고소득 직장을 얻게 해주려고 한다. 세(稅)테크 차원에선 간단한 계산이다. 어설픈 유산으로 세금폭탄을 안기느니 열심히 과외시켜 의사, 변호사 만들어주는 게 낫다는 뜻이다. 이름하여 교육세습이다.

요즘 대만이 잘나간다. 대만도 과거 상속세율이 50%에 달했다. 그러다가 2009년 10% 단일세율로 확 낮춰버렸다. 이때부터 대만 기업인들은 경영권 걱정 없이 본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 결과가 TSMC 같은 초우량기업이다. 주가를 비교해보면 대략 2010년부터 한국 증시가 대만에 밀리기 시작한다. 상속세를 그대로 두고 밸류업을 하겠다고? 문제의 근원을 무시한 말장난이다.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에는 상속세가 없었다. 상속세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34년 조선총독부 훈령을 통해서였다. 그래서 최악의 일제 잔재로 상속세를 꼽기도 한다. 정의로운 전통인 양 떠받들 이유가 없다.

상속세 문제는 '국민 눈높이'를 핑계로 마냥 미뤄놓을 일이 아니다. 골든타임이 있는 이슈이므로 해결을 서둘러야 한다.

작년에 상속증여세로 거둬들인 세금이 14조원이었는데, 전체 세수의 5%도 안 된다. 하지만 가만 놔두면 앞으로 상속세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1997년 이후 28년째 10억원 공제 한도는 그대로이지만, 국민 소득수준은 물가 등으로 계속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수 비중이 커질수록 상속세는 건드리기 힘들게 된다.

상속세를 손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과거 보수 정부에서도 있었으나 번번이 흐지부지됐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뚝심'만큼은 대단한 윤석열 정부는 상속세 개편에 진심인 것 같다. 지난 7월에 일부 개편안을 내놓기도 했다.

걸림돌은 거대 야당이다. 신기한 것은 야당 정치인 상당수가 사석에선 상속세 개편에 찬성한다는 점이다. 이름을 밝히면 모두가 깜짝 놀랄 야당 정치인이 "지금 상속세는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걸 직접 들은 적도 있다.

정치인이 지지층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건 이해한다. 그런데 과연 상속세가 그 지지 계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일까. 금투세처럼 '아니올시다'가 정답이다.

[이진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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