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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유엔 발언권’ 쥔 일 극우단체…위안부·강제동원 왜곡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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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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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유엔(UN)으로부터 ‘특별 협의 지위’를 얻어 유엔 인권기구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을 왜곡하는 활동을 수년째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4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누리집을 보면, 새역모와 국제역사논전연구소(iRICH), 나데시코 액션(JWJP) 등 일본 우익 단체 5곳은 지난달 17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위원회)가 스위스 제네바 유럽 본부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유엔여성차별철폐 조약 심사에 의견서를 내어 “위안부’가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계약을 통해 고용되었다는 사실은 ‘위안부’ 당사자에게 아무리 불편하게 보일지라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진실에 눈을 감은 척하면서 ‘위안부가 강제 납치돼 성노예처럼 취급당했다’는 고집스러운 주장은 비판받고 철회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근거의 하나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장한 2022년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의 논문을 들었다. 또 새역모와 함께 공동 의견서를 낸 나데시코 액션은 누리집을 통해서도 16일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비공개 회의에 발언 기회를 얻어 “위안부 제도는 부모가 동의한 계약에 따라 허가된 매춘이었고 이들이 개인 업소에서 일했다”며 “보수가 좋았고 기간이 끝나기 전에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주장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새역모 등은 “(아베 신조 1차 내각 때였던) 2007년 일본 정부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된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는 ‘일본군과 정부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은 확인 가능한 어떤 문서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2016년에도 당시 아베 신조 총리(2차 내각)는 이같은 공식 견해를 유지하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도 주장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국내 시민단체들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국내 시민단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2017년부터 3년간 보조금과 기부금을 받아 활동해온 사실을 문제 삼는가 하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거처인 ‘나눔의 집’에 모금 활동이 이뤄진 것 등을 거론하며 “끝나지 않는 위안부 문제의 배경에 ‘위안부 사업’이 있다”는 주장도 했다.



아울러 이들은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지난 2016년 일본 정부에 대한 ‘정기이행 보고서’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구제책이 불충분하다는 비판과 함께 일본 교과서에 위안부 문제의 적절한 반영 권고와 일본 정부 지도자·당국자의 무책임한 발언이 피해자들에게 심적 고통을 주고 있다는 지적을 철회할 것 등 7가지 요구 사항도 제시했다.



‘나데시코 액션’은 2일 누리집에서 “(일본 정부가) 유엔에 많은 돈을 내면서도 착한 아이처럼 굴다가 트집을 잡힌 채 전통 문화와 국격, 가정들까지 망가뜨리는 어리석은 관계에서 벗어날 최선의 방법은 불필요한 조약을 폐기하는 것”이라며 “법치국가인 일본에 유엔의 간섭과 권고는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유엔 경제사회위원회가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설치의 근간인 유엔여성차별철폐 조약을 부정하는 단체에 특별 협의 지위를 인정해 이들의 왜곡된 주장을 고스란히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는 일본 정부도 지난 1993년 발표한 고노 담화에서 “군의 관여 하에 수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고 피해를 인정한 문제다. 새역모 등이 주장한 위안부 관련 일본 정부 견해는 아베 신조 1·2차 집권 시기 고노 담화 흠집 내기를 가리키는 것인데, 아베 정부도 담화 자체를 뒤집지는 못했다. 또한, 새역모 등이 주장한 아베 1차 집권 시기 고노 담화 흠집 내기 넉달 뒤였던 2017년 7월 미국 하원에서 조사 뒤 위안부 피해 문제를 전쟁범죄이자 인권유린 사건으로 규정해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관련 내용의 일본 교과서 수록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와 네덜란드 등에서도 위안부 결의안이 나왔다.



새역모가 유엔에 공식 의견서 제출과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은 유엔이 인정한 ‘특별 협의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누리집을 보면, 새역모는 ‘역사 교과서를 위한 일본 모임’(Japan Society for History Textbook)이란 이름으로 지난 2019년부터 유엔의 특별 협의 지위를 얻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유엔 누리집의 ‘특별 협의 지위 단체’ 소개란에 새역모는 “우리의 사명은 학교에 좋은 교육 자료를 제공하고 모든 어린이에게 동등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도쿄에 본부를 두고 일본 전역 15개 지부에 회원 2천여명을 가진 단체라고도 설명했다. 다른 단체들은 새역모를 통해 ‘공동 의견서’ 등의 형태로 유엔에서 발언 기회를 얻고 있다.



유엔 경제사회위원회는 각국의 비정부기구(NGO)로부터 전문적 조언을 듣고, 이들이 위원회에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준다는 취지로 포괄·특별·명부상 등 세 가지 협의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최소 2년 이상 엔지오 활동과 유엔 관련 활동 등 일정 요건을 갖춰 유엔에 신청하면 19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엔 엔지오 위원회 추천을 통해 지위가 부여된다. 한국에서도 2014년 정의연이 특별협의 지위를 얻은 것을 비롯해 일부 시민단체들이 이를 활용해 유엔 활동을 하고 있다. 서채완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는 한겨레에 “의제 제안 자격이 있는 포괄적 협의지위와 달리 특별 지위는 유엔 특정 분야 위원회나 이사회에 의견서 제출, 발언, 참석이 가능하다”며 “다만 해당 단체가 부적절한 행위 등을 하면 지위가 해제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새역모는 이 지위를 악용해 지난해 3월에도 유엔 인권이사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와 관련해 “이른바 ‘조선인 피해자’들은 당시 일본 국민으로 그들을 징용한 것은 합법이었고, 노예 노동자가 아니었다”며 “일·한(한·일) 청구권 문제는 개인의 청구권을 포함해 1965년 체결된 정부간 협정에 의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해결’됐다”는 등 억지 주장을 펴왔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한겨레에 “새역모 등이 유엔에서 부여한 지위를 이용해 역사적으로 확증된 사실에 어긋나는 발언과 의견서를 내는 것은 역사 부정 행위이자 민주적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유엔의 가치인 피해자 중심 원칙을 훼손할 뿐 아니라 피해자와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까지 모욕하고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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