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왼쪽)와 윤석열 대통령(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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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혁 | 기획부국장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대선) 경선 때부터 (나를 도와)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경남 창원의창 공천)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
지난달 31일 공개된, 명태균씨를 상대로 한 윤석열 대통령 통화 녹음이다. 대통령 취임 하루 전인 2022년 5월9일 이뤄진 통화로, 당선자 시절 여당 공천에 개입했다는 자백처럼 들린다. 여당 공천 관여 혐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해 징역 2년을 이끌어낸 당사자의 천연덕스러운 발언이 어이없었지만, 개인적으로 더 관심을 끈 건 뒤이어 공개된 이날 통화의 맥락에 관한 명씨의 설명이었다.
“(통화할 때) 지 마누라가 옆에서 ‘아니 오빠, 명 선생 그거 처리 안 했어? 어, 명 선생님이 아침에 어, 이래 놀라서 전화 오게끔 만들고, 오빠 이거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는 거야. (윤 대통령이) ‘나는 분명히 했다’라고 마누라(김건희 여사)보고 얘기하는 거야.”
김 여사는 ‘대통령 자격’을 언급하며 남편을 압박하고, 윤 대통령은 부인 눈치를 보며 명씨에게 해명하는 모습이 웃프게만 그려졌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새삼스럽지도 않은 얘기다. 지난 2년6개월 김 여사의 국정, 정치 관여 증언과 자백은 계속 이어졌으니 말이다.
정권 출범 때부터 ‘김건희 라인’이 공공연히 조명됐고, 김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 관련 인맥과 업체들이 수시로 뉴스를 장식했다. 몇달 전엔 “이철규가 용산 여사를 대변해서 공관위에서 일을 하고 있다. … 아주 그냥 여사한테 이원모(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하나 어떻게 국회의원 배지 달게 해주려고”라는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음성까지 나왔다. 이 전 비서관 부인이 방미 때 김 여사를 수행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고, 발언 당사자는 대통령실 컨펌이 있어야만 갈 수 있다는 낙하산 자리를 꿰찼다니 이래저래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김 여사 본인의 처신은 어떤가. “일반 국민은 바보” “캠프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 … 내가 말하면 네 자리 만들어줄 수 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가만 안 둘 것” “얘네들 내가 청와대 가면 전부 다 감옥에 넣어버릴 거다” 같은 말은, 자신을 공동 대통령쯤으로 의식하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한때 세기의 브로맨스를 보여줬던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갈라선 계기가 된 ‘김 여사 메시지를 한 대표가 씹었다’는 문자 파동도, 김 여사가 본분을 망각하고 여당 비대위원장과 ‘직거래’를 시도한 것에서 시작됐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김 여사 얘기만 나오면 물불 안 가리고 엄호할 뿐이다. 검찰이 22억원 이익을 얻었다고 밝힌 모녀의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는 “수천만원의 손해”를 본 것이고, 명품 가방 수수도 “박절하지 못해서”라고 억지를 부린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듯 아슬아슬한 모습이 그의 눈에만 들어오지 않는 걸까. 대통령실 ‘한남동(김건희) 라인’, ‘간신 7인’ 같은 말이 나돌아도 그게 뭔 문제냐는 듯한 태도에 이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상황이 이러니, 권력 움직임에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는 재벌들은 정권 초부터 코바나 등 김 여사 쪽 인사들 영입에 불을 켰다. 공직 사회에서도 김 여사는 금기어다. 검찰만 해도 김 여사와 잘못 엮인 이들은 하나같이 피를 봤다. 장모 최은순씨를 수사하거나 기소했던 검사는 물론, 윤 대통령과 김 여사 결혼식 사회를 봤을 정도로 각별한 후배 검사까지도 김 여사 관련 사건 처리에서 삐끗했다가 모멸적인 인사를 당한 끝에 옷을 벗어야 했다. 대통령에 밉보이는 건 몰라도 김 여사에게 밉보이면 끝장이니, 김 여사가 V1(대통령)보다 앞선 ‘V0’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명태균씨에게 건넨 덕담’ 수준의 통화다. 법적·정치적·상식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 김영선 전 의원 공천 관련 윤 대통령 육성이 공개된 뒤 정진석 비서실장이 내놓은 해명이다. ‘너희는 떠들어라. 우린 뭉개고 간다’는 말 같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게, 명태균 통화는 예기치 않게 실체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을 뿐이란 점이다. 김 여사가 정권 대주주 노릇을 해왔다는 실체가 분명하다면, 다른 방식 다른 계기로 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권, 아니 김건희-윤석열 정권의 미래가 궁금한 이유다.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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