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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고려아연 기습 유상증자, ‘쩐의 전쟁’ 게임체인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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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지난 31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고려아연의 기습적인 유상증자 발표와 관련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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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이 2조원을 웃도는 자기주식(자사주) 공개매수를 끝낸 지 일주일 만인 지난 30일 2조5000억원(잠정치, 373만여주)에 이르는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최윤범 회장 쪽과 경영권 분쟁 중인 엠비케이(MBK)파트너스연합(엠비케이+영풍)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대규모 유상증자(유증)를 의결할 줄은 엠비케이연합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하한가까지 밀렸다.



최 회장 쪽의 의도에 대한 시장 해석은 명료하다. 엠비케이연합이 요구한 임시 주주총회 또는 내년 정기주총 표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으로 본다. 유증이 이대로 진행되면 최 회장 쪽과 엠비케이연합의 지분율은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청약한도와 우리사주조합 배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청약한도는 특수관계인까지 합쳐서 1인당 11만1979주까지다. 엠비케이연합이 아무리 돈을 싸들고 유증에 참여해도 받을 수 있는 신주는 이게 전부라는 이야기다. 유증 이후 전체 발행주식 수 대비로 0.5%에 불과하다. 반면 최 회장 쪽 우호지분이 될 우리사주조합에는 74만6530주가 우선배정된다. 관련 법 규정에 따라 우리사주에 공모주식의 20%를 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증 후 전체 발행주식 수 대비로는 3.3%에 이르는 물량이다. 한가지가 더 있다.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청약 과정에서 최 회장 쪽 우호세력이 대거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사업관계로 엮여 있는 협력업체들이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면 지분율 역전 격차는 좀 더 커질 수도 있다.







MBK,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추진





엠비케이연합은 “이번 유증은 기존 주주와 자본시장 질서를 유린하는 결정”이라고 주장하며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유증은 공시 하루 만에 금융당국에 제동이 걸리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1일 긴급 브리핑에서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 기간 동안 이미 유증을 위한 실사작업을 진행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공개매수신고서에서 투자자들에게 유증 가능성을 알리지 않아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는 이야기다. 조사 결과에 따라 유증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어 보인다.



과거 판례 중 고려아연과 유사한 사례가 있다. 그동안 법 규정 개정 등 변화가 있어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겠지만 참고할 만한 가치는 있다.



약 20여년 전인 2003년, 케이씨씨(KCC)의 경영권 공격에 직면한 현대엘리베이터가 청약한도를 적용한 대규모 일반공모 유증을 추진했다. 이때 케이씨씨가 가처분으로 유증을 저지한 사건이다. 최 회장 쪽이 이번 일반공모 결정을 하기 전에 이 판례를 심도 있게 검토하지 않았을 리 없다. 당시 판결의 취지는 지배주주 지배력 유지나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배제한 채 주주가 아닌 사람에게 신주를 발행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최 회장 쪽은 왜 유증을 밀어붙이게 됐을까. 필자는 당시 재판부(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민사부)가 작성한 가처분 결정문과 사건에 참여했던 대형로펌 변호사들이 학회에 기고한 논문(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의 쟁점 고찰), 그리고 당시의 유증 공시 등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2003년 11월14일 케이씨씨그룹은 계열사와 사모투자펀드 등을 동원해 현대그룹 지주회사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44.4%를 취득했다고 발표했다. 경영권 인수 의지도 천명했다. 4개월 뒤 정기 주주총회(2004년 3월)에서 양쪽의 이사선임 표 대결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사흘 뒤인 11월17일 긴급 이사회를 열었다. 기존 발행주식 수(보통주 560만여주)의 1.8배에 이르는 1000만주 일반공모 유증을 의결했다. 자금조달 목적은 시설투자 및 사업 다각화였다. 유증을 거쳐 국민기업이 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 유증의 청약한도는 불과 300주였고, 우리사주조합에 공모물량의 20%가 배정됐다. 케이씨씨 쪽 지분율은 유증을 거치면 44.5%에서 15.9%로 급락하는 상황이었다. 케이씨씨는 곧바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제기했고, 인용(승소) 결정을 받아냈다. 케이씨씨의 주장은 이랬다.



‘이번 유증은 케이씨씨 쪽 지분율을 현저하게 낮추고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 우호지분율을 높여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지,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청약한도를 크게 낮춰 대량 실권을 유도한 뒤 실권주를 우호세력에게 배정하는 등 유상증자 방법이 현저하게 불공정하다.’



이에 대해 현대엘리베이터는 신주발행 목적이 지배권 유지나 경영권 방어에만 있다는 것이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는 한 경영상 목적은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케이씨씨 쪽에도 증자 참여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므로 유증 방식이 현저하게 불공정하지 않다는 논리를 폈다.





적대적 M&A 방어라는 믿음



법원은 케이씨씨 손을 들어줬지만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재판부의 판시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주발행 목적이 기존 지배주주의 지배권 및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있다거나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라 하여도,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는 자본의 성격과 그 의도, 회사의 사업내용이 사회경제적으로 차지하는 중요성 등을 살펴서 판단해야 한다. 기존 지배주주의 지배권이나 경영진의 경영권 유지가 회사나 일반주주에게 이익이 된다면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한 신주발행으로 인정할 수 있다. 다만,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증은 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신주발행을 금지한다.’



최 회장 쪽은 당시 재판부 판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현대엘리베이터에는 해당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고려아연에는 해당한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최 회장 쪽이 이번 분쟁 이후 보여온 프레임은 한결같다. 고려아연은 국가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간산업체인데 투기적 사모펀드가 적대적 엠앤에이를 추진하고 있으며,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확보하면 회사 주요 자산을 해외에 다 팔아넘길 거라는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증을 가로막았던 이 판례가 역설적으로 고려아연의 유증을 터줄 것이라는 믿음을 최 회장 쪽이 가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김수헌 MTN 기업경제센터장
‘기업공시 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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