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反간첩법’ 구속된 한국인 딸 인터뷰
“아빠, 11개월째 구금…편지로만 소통
中회사서 임원급 아니고 주요회의 배제
보내온 자필 서신엔 ‘답답하다’ 가득”
지난해 12월 중국 허페이시에서 개정 반(反)간첩법에 따라 체포된 한국 교민 A씨(오른쪽)의 가족./A씨 가족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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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중국에서 간첩 혐의로 연행된 시기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의 중국 유출로 한국이 떠들썩했던 시점과 일치한다.”
중국 정부가 반(反)간첩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최근 확인한 50대 한국인 교민의 딸이 30일 본지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중국 반도체 회사에서 회의 참석조차 불가능했고, 고급 반도체 기술을 다루지도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몰리다니 말이 되느냐”고 했다. 중국이 한국 반도체 기술을 빼돌린다는 논란이 거세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측에서 ‘반간첩법 적용’이라는 새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주장이다.
과거 삼성전자에 근무했고 이후 중국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에서도 일했던 이 교민은 지난해 12월 18일 중국의 자택에서 연행됐다. 지난 5월 정식 구속돼 허페이의 구치소에 갇혔다. 그는 창신메모리의 정보를 한국으로 유출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지난해 7월 간첩 혐의 적용 범위를 확대한 개정 반(反)간첩법을 시행한 이후 이 법을 한국인에게 적용한 것은 처음이다.
실제로 이 교민이 연행된 시점은 삼성전자 전직 직원이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인 16나노급 D램 기술을 중국 대표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에 넘긴 것으로 보고 한국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실이 알려진 직후였다. 앞서 지난해 6월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복사판’을 중국 시안에 지으려고 한 전 삼성전자 상무가 구속 기소된 사건도 있었다. 당시 한국에선 반도체 기술의 중국 유출에 대해 우려하는 여론이 급격히 확산했다. 중국이 자국 반도체 기업을 보호하고 한국에 대한 협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의 기술자나 고급 인력에 대한 ‘간첩 몰이’를 자제했던 관례를 깼다는 분석이다. A씨의 딸은 본지에 “중국이 한국을 겨냥해 반간첩법을 적용하기 위한 본보기를 만드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작년 12월 중국 국가안전국 수사관들이 집에 들이닥친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나.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자택에 아침 일찍 수사관들이 찾아와 아버지를 끌고 갔다. 잠옷 차림이었던 아버지는 ‘옷만 갈아입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중국어를 못하는 어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지난 5월 26일 정식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되기 전까지 아버지는 허페이시의 외딴 호텔에서 조사를 받았다. 가족들은 아직도 그 호텔이 어느 곳이었는지 모른다. 지금껏 아버지와는 대면 만남 없이 편지로만 소통했고, 그마저도 9월부터 끊겼다.”
-중국에서 아버지에게 반간첩법을 적용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버지가 간첩 혐의로 연행된 시점은 삼성 반도체 기술이 중국 창신메모리로 유출된 사건이 한국에 알려졌을 때(지난해 12월 13일)와 겹친다. 두 사건에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주중 한국 대사관에서도 이번 사건을 ‘특이 케이스’라고 한다.”
-중국 당국은 아버지의 혐의를 뭐라고 설명하는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있던가.
“지금까지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전혀 없었다. 지난 3월 어머니가 참고인 조사를 받았을 때는 ‘창신메모리’를 주로 언급했다. 조사관은 ‘남편이 중국 회사에서 일하며 도움을 준 것은 맞지만, 잘못한 일이 분명 있다’고만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창신메모리에서 기술 개발이나 사업 계획에 얼마나 관여했는가.
“창신메모리에서 아버지는 임원급이 아니었고, 주요 회의에서도 배제돼 서류 전달만 했다고 들었다. 당시 회사가 새 공장을 설계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며 보안도 강화됐는데, 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내부 프로젝트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가 전문성을 갖고 있는 반도체 공정의 ‘이온 주입’ 또한 고급 기술로 분류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9년 전 중국으로 넘어온 직후 세 곳의 회사를 다녔다. 이직이 비교적 잦았던 이유는.
“창신메모리가 아버지를 내쳤다. 2016년 10월에 5년 계약으로 입사했는데 3년 6개월 만에 퇴사 요구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인근 지역(산둥성)의 회사로 이직한 것이다. 당시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다른 한국 기술 인력들도 비슷하게 중도 퇴사했다.”
-20년 이상 삼성에서 기술자로 근무한 아버지가 갑자기 중국을 선택한 이유는.
“삼성에서 예상치 못한 시점에 사실상 타의로 사직해야 했고, 국내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두 딸을 키우는 가장으로서 고민하다가 삼성 재직 중에 알고 지내던 선배의 권유로 중국행을 택하게 됐다. 중국 회사로 이직할 때도 집에 있는 PC를 다 처분할 정도로 보안 문제에 연루되는 것을 극도로 우려했다.”
-아버지가 중국에서 근무할 때 간첩 혐의를 받을 위험성을 인지했는가.
“아버지는 작년 초 재직 중이던 중국 회사를 퇴사하고 개인 컨설팅 사업을 위해 한국에 머물다가 (개정 반간첩법 시행 직후인) 작년 9월에 스스로 중국에 다시 왔다.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기에 가족과 추석을 보내고자 중국에 온 것이다.”
-아버지가 구치소에서 지병인 당뇨병 약도 지급받지 못한다고 들었다.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떤가.
“아버지가 지난 5월 구치소에 수감된 이후 당뇨약을 한 번도 복용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제2형 당뇨를 앓고 있기에 혈당 수치가 높든 낮든 약을 꼭 복용해야 하는데, 구치소 내 중국 의사가 혈당 측정 결과에 따라 약이 필요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지금은 합병증 발병 우려가 큰 상황이다.”
-중국에서 반간첩법에 따라 구속된 외국인들이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는데 걱정이 많겠다.
“반간첩법의 특성 때문에 10년 이상 징역이나 무기징역형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달에 검찰로 사건이 넘어갔는데, 11월 초에 검찰에서 결과가 나오고 같은 달 말에 재판이 열리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가장 억울한 점은 무엇인가.
“한국인이 반간첩법이란 생소한 법으로 인해 오랜 시간 구금됐는데, 사건 초기부터 주중 한국 대사관의 조력 등에서 답답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골든 타임’인 지난해 12월 베이징 대사관과 상하이 총영사관이 서로 관할 사건이 아니라며 업무를 이관한 탓에 영사 배정 등에 일주일 정도가 지연됐다.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도 충분히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에서 기억나는 문구가 있나.
“아버지가 보내오는 자필 편지에는 ‘걱정하지 말라’ ‘답답하다’는 말로 가득하다. 지난 6월 대학 졸업식 사진을 보내드렸더니 ‘사진을 보고 한참 동안 울었다’는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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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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