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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일)

기후악당, 대한민국 [오동재의 파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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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해 12월6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오늘의 화석상’을 수상한 한국. 기후솔루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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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재 | 기후솔루션 연구원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34명이 더위로 목숨을 잃었다. 3704명은 온열 질환에 응급실로 향했다. 유난히 비가 쏟아지는 여름이었다. 7월 초, 충청 지역에 내린 비는 하루 만에 120채의 집을 잠기게 했다. 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같은 여름이었다. 지난 6월 파리, 한국 정부의 반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사이의 기후 협상이 가로막혔다. 신규 화석연료 사업 지원을 제한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머리를 맞댄 자리였다. 일본을 포함해 유럽연합(EU), 미국, 호주 모두 금융 지원 제한에 손을 들었다. 한국이 반대했다.



한국의 화석연료 사업 금융 규모는 압도적이다. 한국이 매년 신규로 집어넣는 돈은 전세계 2위에 이른다. 이렇게 작은 나라가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대부분 내수용이 아니다. 국외의 화석연료 발전 사업, 플랜트 사업 같은 것들이다. 조선업도 있다. 한국 조선소는 전세계 엘엔지(LNG) 운반선 발주 물량의 80%를 담당한다. 자원개발 사업도 있는데, 신규 수입용은 이제 잘 없다. 우리 가스 수요가 이제 줄어들어서 그렇다. 그래서 지금의 자원개발 사업은, 한국이 아닌 동남아시아 내수 진작 목적이다.



2020년 탄소중립 선언이 있었다. 이후 지난 몇년, 우리의 시간과 정부·공적금융의 시간은 반대로 달렸다. 이제 여름에 대한 우리의 인상은 다르다. 비가 올 때면 출퇴근길에 버스가 잠기진 않을까 걱정한다. 햇볕이 뜨거운 날이면 부모님의 외출을 걱정한다. 현실이 고되니 일회용품 덜 쓰는 것도 포기했다. 죄책감만 늘어난다.



같은 시간 속, 정부와 공적금융은 어땠나. 새로운 화석연료 투자를 줄여나가긴커녕 매해 금액을 대폭 늘려왔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최근 4년간 20조원가량을 신규 화석연료 사업에 지원했다. 그전 4년 동안 지원했던 14조원보다 40% 늘어났다. 또 다른 공적금융인 한국무역보험공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새 우리 공적금융은 그 누구의 제약도 받지 않고 전세계 화석연료 팽창을 견인 중이다.



지금 지원을 받는 사업들은 한국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 시점인 2050년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온실가스를 내뿜을 것이다. 올해 수출입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4년간 이 은행의 투자에 따른 신규 화석연료 사업의 온실가스 배출량만 해도 최소 9억2천만톤에 이른다. 한국 정부의 1년 온실가스 배출량(6억7천만톤)을 훌쩍 뛰어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화석연료 (금융을) 전면 중단하는 것은 저희한테는 좀 안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조선산업의 주력이 엘엔지선이고 … 유럽에 있는 나라들보다 에너지 전환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으로 반대한 것으로….” 지난 21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윤희성 수출입은행장의 말이다.



정작 경제협력개발기구 협상을 주도하는 유럽연합이 협상장에 들고 간 것으로 알려진 안은 이 말과는 다르다. 이번에 설령 협상이 통과되더라도 예외적으로 화석연료 사업에 지원할 수 있다. 다만 해당 사업이 파리협정의 1.5도 목표(지구 평균기온 상승치 제한)에 부합하는지 최신의 과학 기준으로 입증해야 한다. 한국은 파리협정에 가입한 국가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입증 책무도 지지 않고, 계속해서 신규 화석연료 금융을 늘리려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유난히 더운 여름들일 테다. 유난히 비가 쏟아지는 여름들일 테다. 그 여름 속에서 나의 조카들이 안전하길 소망한다. 당신의 아들, 딸들이 안전하길 소망한다. 나의 조카를 위해 국가에 바란다. 당신의 자식들을 위해 국가에 바란다.



올해 마지막 경제협력개발기구 화석연료 금융 제한 협상은 11월 세번째 주에 다시 시작된다. 발목만 잡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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