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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일)

“노예무역 유산 대화할 때”…영연방정상회의, 공동 성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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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연방정상회의(CHOGM) 주최국 사모아의 총리 아피오가 피아메 나오미 마타파(가운데)가 26일(현지시각) 사모아의 수도 아피아에서 정상회의를 마친 뒤 다른 회원국 참석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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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연방 회원국 56개 나라가 “끔찍했던 노예무역의 유산에 대해 대화할 때가 됐다”는 공동 코뮈니케(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제국주의 시대 노예제 문제가 영연방정상회의 공동 코뮈니케에 포함된 건 처음이며, “배상 정의” 목소리도 담겼다.



영국과 과거 식민 지배를 받던 나라로 구성된 이 나라들은 26일(현지시각) 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 섬에서 열린 영연방정상회의(CHOGM)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코뮈니케를 채택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이들 나라는 코뮈니케에서 영국의 식민지배 시절 “끔찍했던” 대서양 노예무역과 원주민 약탈, 납치 등에 대한 “배상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주의하며, “평등에 기초해 공통의 미래를 가꿔가기 위한 의미있고 진실되며 존중할 만한 대화를 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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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왕 찰스 3세(오른쪽)가 25일(현지시각) 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의 수도 아피아에서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와 이야기하고 있다. 둘은 영연방정상회의(CHOGM)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사진기자단, 로이터 연합뉴스


영국은 이번 회의에서 노예무역 문제가 논의되는 것을 꺼렸다. 앞서 영국 총리실은 노예무역 문제는 이번 회의 의제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런 회의 결과는 영국이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아시아의 회원국들의 강력한 요구에 한발 물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4세기 동안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나간 사람은 1천만~1500만명으로 추산된다.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는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이틀에 걸친 회의에서 주요 문제는 기후 변화에 대한 유연성 문제였다”며 노예 무역 문제가 부각되는 걸 경계했다. 그는 “노예 무역에 대한 배상 정의 문제는 공동코뮈니케에서 전체 스무 문단 중 한 문단뿐”이라며 “돈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 이와 관련한 우리 입장은 매우 분명하다”고 배상에 선을 그었다.



노예 무역을 둘러싼 논의는 다음해 3월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영국-카리브해 포럼’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스타머 총리는 이 포럼을 가리키며 “이 문제를 살펴볼 다음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하마 외교장관 프레데릭 미첼은 영국-카리브해 포럼에서 이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보고서”가 제안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2년 뒤 다시 열릴 영연방정상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다시 핵심 의제로 다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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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대통령 폴 카가메가 25일(현지시각) 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에서 열린 영연방정상회의(CHOGM)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기자단,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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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동 코뮈니케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식민지배 피해국들은 영국이 재정적 배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있다. 미첼 장관은 “코뮈니케의 (모호한) 문구 뒤에는 특정 방향으로 가려는 노력이 숨어 있다”며 영국이 결국엔 카리브해 나라들에 재정적 배상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천문학적 규모에 이를 재정적 배상을 꺼리는 영국의 태도에 비춰, 최종 절충될 “배상 정의”는 영국의 공식 사과 표명이나 교육 및 공공 보건의료 프로그램 지원 등의 형태를 띨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관 패트릭 로빈슨은 지난해 8월 비비시(BBC)에 출연해 영국이 카리브해 14개 나라에 노예무역과 관련해 배상해야 할 금액은 24조 달러(3경3천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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