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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일)

교통사고 사망 피해 유족 합의서 속 ‘두 문장’…어쩌면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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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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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려진 아동학대치사 사건이 있었다.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작은 아이를 굶기고 때리고 감금해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인간이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그를 최고의 형에 처하라고 분노에 찬 대중이 돌을 던졌다. 인터넷에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를 추모하는 카페가 생겼다. 파란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는 배경화면의 추모 카페는 낯모르는 사람들의 글들로 채워졌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그곳에서는 아픔 없이 행복하렴”, “잊지 않을게”, “이런 것도 부모냐 콩밥도 아깝다. 똑같이 굶기고 가둬야 한다”, “이런 ×××, ××××”….



처음에는 슬픔과 미안함으로 채워지던 추모 공간은 점점 다 옮길 수도 없는 격한 욕설들로 채워졌다. 그중에는 사건과의 연관성을 알 수 없는 성적 조롱과 혐오의 글들이 태반이었다. 카페에 글을 올린 이들 중 선을 넘는 정도의 욕설과 비방을 올린 이들이 역으로 고소를 당했다. 고소당한 이들 중 한 사람인 케이(K)는 이 상황을 무척 억울해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가 너무 가여워 자신도 모르게 격한 표현을 쓰게 되었다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호소했다. 그런 그의 전과 목록에는 그가 오래지 않은 과거에 아동 성매매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온갖 기상천외한 나쁜 짓들





닉네임 ‘푸른독수리’는 해외 원정 성매매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내에서 꽤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었다. 심심찮게 올라오는 그의 실제 원정 후기는 상세하고 생생한 묘사와 고급 정보들을 담고 있어 커뮤니티 회원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활동한 기간이 어느 정도 되다 보니 오래된 회원들 사이에는 서로 형님, 동생 하며 다른 커뮤니티 못지않은 유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푸른독수리가 이번에 새로 올린 여름 원정 후기에도 역시 ‘형님 정말 부럽습니다, 이번에도 생생한 후기 감사합니다. 비천한 저는 이렇게 후기로나마 대리 만족!’ 같은 댓글들이 이어졌다. 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부러움과 추앙의 댓글 사이에 조금 생뚱맞은 게시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축. 푸른 독수리 형님 둘째 딸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그 아래로, ‘공주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형님’, ‘아기와 함께 행복한 시간 되세요’ 성매매 꿈나무들의 다정하고도 평범한 축하 인사가 길게 따라붙었다.



제이(J)는 별다른 학력이나 자격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고액 알바 광고를 보고 연락해 일을 시작했다. 김 실장이 텔레그램을 통해 시키는 대로 고객을 만나 돈을 받고 지정된 계좌로 송금하면 되는 일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제이를 찾아왔다. 경찰은 그가 보이스피싱 사기의 피해금을 수거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의 설명을 들은 제이는 ‘내가 큰 범죄에 연루되었구나’ 생각하는 대신, 고객에게 수금한 돈을 김 실장이 시키는 대로 송금하지 않는다 해도 그가 경찰에 신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 고액 알바 광고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제이는 친구 피(P)의 명의를 빌려 김 실장에게 연락한다. 김 실장으로부터 일을 받아 그의 일당이 속임수를 써놓은 피해자를 만나 수천만원 현금을 받은 뒤 연락을 끊어버린다. 택시비, 식사비 포함 하루 15만원 받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입이 생긴 것이다. 재미를 본 제이는 고액 알바 광고를 낸 다른 업체들에도 연락한다. 박 과장, 유 대리, 이 실장 등으로부터 비슷한 일을 받고 같은 방식으로 사기 피해금을 먹는다. 알고 보니 세상에는 치킨집만큼 많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있었고 신고할 수 없는 검은돈들이 널려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편, 전에 없이 터지는 수금 사고를 면밀히 분석한 김 실장은 이것이 모두 제이가 벌인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요놈 봐라?’ 때마침 피(P)의 신분을 이용해 알바를 하겠다고 연락해온 제이에게 자신은 현 팀장이라고 소개한다. 현 팀장은 ○○역 3번 출구에서 고객을 만나라고 침착하게 지시하고는, 곧바로 ‘○○역 3번 출구에 보이스피싱 수거책이 있다’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이 제이를 검거하는 순간 현 팀장의 메시지가 전송된다.



‘넌 끝났어, 새끼야.’



그렇게 검거되어 검찰에 송치된 제이는 그때까지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김 실장과 현 팀장은 같은 사람인지, 박 과장과 유 대리와 이 실장도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그를 앞에 두고 나는 누군가 ‘이 중에 제일 나쁜 사람은?’ 같은 문제를 낸다면 매우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이상하고 기막힌 이야기들을 나는 알고 있다. 주로는 표정 없이 책상에 앉아 세상의 온갖 악의와 범죄들을 분류하고 규정할 수 있지만, 이토록 어이없고 난해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생각이 많아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라는 종에게 희망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절망하지는 아니하고, 다음날이 되면 다시 일어나 범죄기록을 헤집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그러다가 간혹 희망 같은 것을 품어보기도 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이런 이야기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해자의 트라우마 걱정한 유가족





갑자기 폭설이 내린 어느 이른 아침. 차를 운전해 출근을 서두르던 말단 공무원 에이(A)는 교통사고를 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의 시골 국도 길에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하고 속도를 올리다가 길을 따라 걷고 있던 피해자를 친 것이다. 피해자는 목숨을 잃었다. 불시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 뒤로, 징역형을 받는다면 공무원직을 잃게 될 에이의 비극이 숨죽여 웅크렸다. 이미 벌어진 비극을 괜찮게 하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남은 삶을 위해 우선은 합의가 필요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합의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피해자 유족이 제출한 합의서에는 얼마간의 돈이 든 봉투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날 아침에 일어난 일로 그도 많이 놀라고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겁니다. 이 돈으로 에이가 트라우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전에는 본 적 없는 합의서의 낯선 문구를 들여다보며, 여기에 담긴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다들 애쓰고 있는 것이구나.’



문득 쏟아지는 폭설처럼 닥쳐오는 삶의 비극 앞에, 매번 낯선 얼굴로 찾아오는 절망과 범죄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애를 써보는 일이겠지만, 그 애씀으로 인하여 아예 무너지지는 않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차가운 코끝에 찡하게 맺혔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부산지검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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