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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백신 만들고도 국내선 출시못하는 까닭 (feat.특허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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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바사 폐렴구균백신 등 발목
국내 특허법원 전문성 부족 지적
전문심리위원 등 제도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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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2016년 국내 최초로 폐렴구균 백신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법원이 화이자의 폐렴구균 백신 '프리베나13'의 물질특허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 제품출시가 2027년까지 지연됐다. 사진은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 모습./사진=SK바이오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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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백신바이오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특허제도 선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특허소송 과정에서 기술적 전문성을 강화해 국내 기업의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2016년 국내 최초로 폐렴구균 백신 개발에 성공했지만 현재까지 이를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8년 대법원이 화이자의 폐렴구균 백신 '프리베나13'의 물질특허가 유효하다고 최종 판단하면서 2027년까지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백신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결과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같은 조성물 특허가 유럽에서는 이미 2014년 독창성이 없다는 이유로 등록 취소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국제 의료구호단체인 국경없는 의사회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당시 국경없는 의사회는 법원의 결정에 유감을 표하며 "화이자의 특허는 기존 7가 백신에 몇몇 혈청형만 덧붙이는 것으로 기술적 향상이 전혀 관여되지 않은 것"이라며 "화이자의 독점이 보존되면서 백신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일이 직접적인 방해를 받고 있다"는 입장문을 냈다.

글로벌 제약사가 국내 법원에 존속기간이 만료된 의약품 특허의 유효성을 주장하며 발목을 잡고 있는 사례는 또 있다. 폐렴구균 백신을 개발 중인 LG화학,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한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도 특허소송으로 발이 묶였다.

SK바이오사이언스 사례처럼 유럽과 상반된 재판결과가 나온 데는 기술 전문성이 부족한 국내 특허소송 체계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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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신규 선임된 기술판사 5명이 독일 뭰헨에 위치한 본부에서 열린 선서식에 참여한 모습. 지난 6월 기준으로 유럽통합특허법원에는 전체 판사 117명 중 생화학, 전자 등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기술판사가 75명을 차지한다. /사진=유럽통합특허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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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심판의 경우 복잡한 기술적 사안을 다루는 만큼 법관과 대리인이 높은 기술적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유럽통합특허법원이 재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판사 제도를 둔 것도 비전문가가 간과하기 쉬운 쟁점을 깊이 파고들어 재판 결과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기술판사는 기술적 사안을 분석해 법률판사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지난 6월 기준 유럽통합특허법원은 전체 판사 117명 중 기술판사가 75명을 차지한다.

반면 국내 특허법원은 대부분 법학 등을 전공한 인문계 출신의 판사가 법률적 판단을 내린다. 외부전문가로부터 자문을 받을 수 있지만 의무가 아닌만큼 활용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 1심에 해당하는 특허심판원의 경우 심판관이 비교적 높은 수준의 기술전문성을 갖추고 있지만 전공분야에 맞게 사건이 배당되지 않는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법률 대리인 제도에서도 차이가 있다. 유럽에서는 변리사가 1, 2심에서 모두 특허침해 소송을 담당할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변리사가 1심까지만 참여할 수 있다. 2, 3심부터는 기술 전문성이 부족한 판사와 변호사가 특허 유·무효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개선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2020년 송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해 이듬해 특허법에 신설된 전문심리위원 제도가 대표적이다. 바이오헬스, 핀테크 등 분야별로 전문성을 갖춘 전문심리위원이 특허심판 사건에 참여해 재판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기존 외부전문가 자문과 달리 전문심리위원은 서면뿐 아니라 구술로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 복잡한 신청절차가 필요 없어 신속하게 심판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전문심리위원의 심판참여 여부는 필수가 아니라 심판장의 재량에 달려있다. 또 2, 3심 법원에 배치된 전문심리위원수는 예산 등의 이유로 특허심판원보다 적어 실제 활용도가 떨어진다. 이에 전문심리위원을 늘리고 심판참여를 의무화하는 등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특허법 시행규칙에서 전문심리위원 선정기준은 '이공계 분야 박사 학위'로 명시돼 있어 백신 바이오 분야의 첨예한 기술적 사안을 다루기 위해서는 이 기준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백신의 경우 국민 보건안전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특허권을 예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독일과 캐나다 등은 코로나19 초기에 이러한 강제실시권 법안을 마련한 바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의 특허 분쟁이 고도화됨에 따라 자국의 기술과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특허심판의 전문성도 고도화돼야 한다"며 "백신바이오 분야의 경우 특허와 관련한 소송이 이전보다 치열하게 발생할 뿐만 아니라 특허 소송의 결과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개발한 제품의 존폐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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