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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53] 예수를 어깨에 짊어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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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콘라트 비츠, 성 크리스토포루스, 1435년경, 목판에 유채, 101 x 81 cm, 스위스 바젤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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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비츠(Konrad Witz·1400년경~1446년경)는 오늘날 독일 지역에서 태어나 1434년에 스위스 바젤의 화가 길드에 등록하고, 이후 줄곧 바젤과 제네바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가다. 그 외에는 생애에 대해 알려진 기록이 없고 연도와 서명이 명확히 남은 작품은 1444년, 예수가 갈릴리 호수에서 풍어(豐漁)의 기적을 일으키는 장면을 그린 제단화 한 점뿐이다.

당시 화가들은 성경 속 풍경을 관념적으로 상상해 그렸으나, 비츠는 눈에 익은 제네바 호수를 상세하게 묘사해 성화의 배경으로 썼다. 멀리 우뚝 선 설산과 맑은 호수를 둘러싼 호방한 산세는 현실적이고 세밀해서 예수의 기적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그뿐만 아니라 다폭 제단화들이 역사의 흐름 속에 낱낱이 분해되어 이리저리 팔려나간 탓에 화가의 정체를 밝힐 수 없는 경우에도, 제네바 풍경이 뚜렷한 비츠의 작품은 비교적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어린 예수를 등에 업고 강을 건너는 성 크리스토포루스를 그린 이 그림 또한 제네바 호수 특유의 산세와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려낸 수면의 파동과 그림자를 통해 비츠의 작품이라고 추정된다.

‘예수를 어깨에 짊어진 자’라는 뜻의 크리스토포루스는 힘센 거인인데, 가난해 배를 못 타는 이들을 어깨에 지고 강을 건네주는 일을 하며 예수를 영접하길 바랐다. 어느 날 한 어린이를 어깨에 태웠는데 어찌나 무거운지 마치 온 세상을 짊어진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그가 바로 구세주 예수였던 것. 이후 기독교인으로 살다 순교한 크리스토포루스는 오늘날에도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다. 물 위를 걷는 예수께서 굳이 그의 어깨를 빌려 강을 건넜으니 이보다 믿음직한 수호성인이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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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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