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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91]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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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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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부분적 경험과 지식을 전체 또는 사실로 인식하는 ‘단순 실재론(naïve realism)’을 경계하는 말이다.

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가 있다는 암묵적 결론, 즉 ‘정보 적절성의 환상(the illusion of information adequacy)’이 단순 실재론의 한 원인이란 최근 연구를 접했다. 내용은 물 공급 문제를 겪는 학교를 그대로 둘지 아니면 상황이 좋은 다른 학교와 합병할지 하는 문제에 대해, A군에는 존속을 지지하는 정보만, B군에는 합병을 지지하는 정보만, 마지막으로 대조군에는 양쪽 정보를 다 제공하고 결정하도록 했다. 대조군은 찬성 비율이 반반이었던 데 비해, 한쪽 정보만 접한 A와 B군은 자기들이 접한 정보를 옳다고 판단한 비율이 80% 선이었다.

그런데 A와 B군에 반대편 정보까지 주고 다시 결정하게 했을 때는 50% 선으로 존속과 합병 결정 비율이 바뀌었다. 정보 적절성의 환상, 즉 내 생각이 불완전하거나 틀릴 수 있다는 관점 유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오랜 시간 사실로 간주한 생각일수록 환상에 빠지기 쉽다.

소식하면 장수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리고 그 중간 과정으로 체중 감소를 중요 요인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저명 학술지에 실린 최근 연구를 보면 꼭 그렇지가 않다. 칼로리를 제한한 실험 쥐의 수명이 늘어나긴 했는데 체중이 너무 빠진 경우는 오히려 수명이 줄었고, 체중을 잘 회복한 쥐가 수명이 길었다는 것이다. 소식이 수명 연장에 도움은 되지만 그 기전엔 회복력 등 복잡한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만 보면 살이 안 빠진다고 무조건 낙심할 일은 아닌 것이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편견을 피해 가는 방법으로 엉뚱하지만 독서를 추천한다. 책에는 작가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강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읽는 이와 작가가 밀고 당기다 보면 좋은 독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읽기 어려운 소설이 꼭 나쁜 소설은 아니다.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내 생각과 충돌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밀당 속에서 내 프레임을 강화할 수도, 아니면 일부를 받아들여 더 풍성하게 내 가치관을 확장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 준다면 이런 거겠지’로 시작하는 한강 작가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 화가, 마크 로스코에 대한 시이다. 작품에서 작가의 갈라진 영혼의 내면을 느낀다는 것, 뭉클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너무 강해져 모두가 피곤한 세상이다. ‘문화 하기’ 좋은 가을이다.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영혼이 담긴 작품과 밀당하며 내 마음을 풍성하게 확장하는 여유를 가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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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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