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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사설] ‘가짜 위험성 평가’ 중대재해기업들, 정부 감독 줄일 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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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지난 8월28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후 대기 장소인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난 6월 아리셀 공장에선 화재 사고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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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를 일으켜 기소된 기업 대부분은 위험성 평가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터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도 지키지 않은 것이어서 심각성을 더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업의 자율적 점검 노력이 중요하다며 산업안전보건 감독 비중을 줄여놓은 상태다.



한겨레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기업 62곳에 대한 공소장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87.1%가 위험성 평가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험성 평가는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발굴하고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경영책임자의 핵심 의무다.



하지만 기소된 기업들은 가짜 서류를 내는 등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일관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위험성 평가서를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는가 하면 일부 공정에만 평가를 실시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 6월 23명이 희생된 아리셀 화재 참사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아리셀은 2023년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지 않았는데도, 2022년 자료의 시행일만 변경하는 방식으로 평가 자료를 조작했다. 또 평가를 한 뒤에도 사후 조처를 이행하지 않아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도 있었다. 기본적 의무마저 저버린 기업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안타까운 희생을 부른 것이다.



기업의 자정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관리감독이 한층 강화돼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자율적인 기업의 산업재해 예방 노력을 이끈다는 차원에서 ‘위험성 평가 특화점검 제도’를 도입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 감독 비중을 줄이고 기업의 예방대책을 지도·점검하는 제도를 신설한 것이다. 이는 위험성 평가를 요식행위로 여기는 기업들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지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선 지난해 특화점검을 실시한 사업장에서도 산업재해가 빈발해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평가 자료를 조작했던 아리셀도 2021~23년 3년간 위험성 평가 우수사업장 인정까지 받았다. 제도 전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를 예방하려면 정부가 기업들에 보내는 정책 신호가 매우 중요하다. 앞서 정부는 경영계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중대재해처벌법을 후퇴시키려 한 바 있다. 기업 규제 완화 명분만 앞세울 때가 아니다. 더 이상 희생이 없도록 기업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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