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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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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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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문학이라는 것이 원래 연결의 힘을 가지고 있지요. 언어는 우리를 잇는 실이기도 하고요.”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한강의 단독 인터뷰 기사를 읽다 눈에 띈 문장이었다. 한강이 ‘54살, 아시아, 여성, 한글’로 쏘아 올린 폭죽이 지구 상공을 수놓고 있다.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긍지와 희망의 일렁임을 다잡으려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 관련 책들 앞에 선다.



근대 이전까지 인디언들은 안 보이는 자연의 질서나 영성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다. 자연은 완성된 아름다움 그 자체였고, 동식물은 제각각의 영혼과 존재 이유를 지닌 생명체였다. 인디언들은 그런 자연과 공존하면서 끊임없이 연결되고자 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기에 시공간에 의한 분리나 단절은 중요치 않았다. 문자를 사용하는 일 또한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여겼기에 구술(口述)로 세상을 명명하곤 했다.



그런 그들에게 나무는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키 큰 친구’고, 친구는 ‘나의 슬픔을 대신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었다. 10월은 ‘큰 바람의 달’이자 ‘시냇물이 얼어붙는 달’이다. 늑대와춤을, 주먹쥐고일어서, 발로차는새, 머릿속의바람, 열마리곰…. 그들은 가까이 있던 자연이나 겪은 사건, 가진 재능이나 업적을 연결해 이름을 붙이는데, 남이 지어준 이름과 내가 지은 이름이 다르고 수시로 바꿀 수도 있다. 발견처럼 열려 있는 이런 명명법은 자연과 인간, 꿈과 삶, 의지와 선택, 요청과 응답을 잇고 연결함으로써 서로에게 가 닿으려는 문학의 욕망에 맞닿아 있다. 인디언식 명명 덕분이었을까. 한때 인디언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곤 했다. 인디언 소년의 아름다운 성장 서사를 담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사춘기 딸들이 읽었으면 해서 아이들 책장에 꽂아두었다. 인디언 추장의 연설 모음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는 소유나 질투나 미움에 지칠 때, ‘아메리카 인디언의 지혜’와 ‘격려 속에서 자란 아이가 자신감을 배운다’는 삶의 지혜를 묻고 싶을 때, 경전처럼 들춰보곤 한다.



스무여권의 책들 사이에서 절름발이사슴(레임디어)의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를 꺼내 읽는다. 인디언의 인사말 ‘미타쿠예 오야신(Mitakuye Oyasin,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에 동그라미가 처져있다. 모든 것이 이어져 있고 서로를 품고 있는 ‘원 안의 원’의 세계에서 “우리 모두는 생태적으로, 또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단다. 그러니까 자연과 인간, 대지와 생명, 건강과 치료의 원리, 그리고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과 사회 활동이 끝없이 연결된 고리들에 의해 하나의 원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모두가 ‘위대한 신비’의 일부다. 우리에게 생명은, 모든 생명은 성스럽다”, 세계를 이해하는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 상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 그 모든 걸 느끼는 방식”이라는 문장에도 밑줄이 그어져 있다.



밑줄 친 문장들은 최근 유행하는 포스트-휴먼 담론의 선두 주자인 질베르 시몽동, 브뤼노 라투르, 도나 해러웨이 등이 입이 마르게 주장하는 앙상블, 연결망, 실뜨기 이론들과 맥을 같이 한다. 인간이, 인간에 의해 타자화되었던 여성, 유색인종, 자연, 동식물, 심지어 기계나 사물과의 공생, 공존, 공진화를 모색하는 이론들이다. 백인 남성 중심의 근대적 인본주의는 비인간과 인간, 여성과 남성, 몸과 마음, 무생물과 생물이 근본적으로 다른, 종속과 지배로 구분된 존재라는 틀 속에서 작동했다. 그 결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훼손, 핵폭탄과 전쟁, 양극화와 혐오, 무한경쟁과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전지구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엉켜 있기도 한 것이다.



내가 인디언 책들을 자주 들춰보는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과잉된 삶과 잉여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지, 어떻게 환경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세계 평화에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한 해법을 그 책들이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름발이사슴이 말한다. 생명의 다른 이름인 ‘위대한 신비’와 세상을 이해하고 느끼는 ‘마음 상태’를 근간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이 새롭고도 오래된 정신 속에서는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정신이 바로 내가 일렁이면서 꿈꾸는 문학의 뿌리일 것이다.



책상으로 돌아와 며칠 전에 받은 새 시집을 펼친다. “나는 세상 끝, 벼랑으로 가/ 팔을 뻗었다// 이어지는 것이 있다”(손미,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라는 ‘시인의 말’을 읽는다.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시편들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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