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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영화 ‘프리티 우먼’ 제작자도 핵 스파이였다, 이스라엘 核개발 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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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의 외설(外說·ExTalk·엑스톡)]

1948년 건국과 함께 핵 개발 착수

국방 차관까지 나서 협조자 영입

할리우드 스파이 “조국을 위해 했다. 나는 자랑스럽다”

조선일보

할리우드 유명 영화 제작자인 아르논 밀찬(가운데)과 영화 배우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밀찬은 영화 제작자로 일하며 이스라엘 핵 개발 관련 첩보 활동을 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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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방공 무기 ‘아이언돔’이 미국의 반대에도 극적으로 개발된 스토리를 지난 뉴스레터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이번엔 예고대로 ‘핵 개발 비사(祕事)’입니다.

저는 2016년 예루살렘 한 호텔에서 이스라엘 핵 개발 및 보유 사실을 폭로한 이스라엘 핵시설 엔지니어 모르데카이 베누누를 만났습니다. 별 얘기를 다 들었습니다.

베누누는 국가 기밀 폭로에 따른 반역죄로 18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조건부로 가석방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에게 들은 걸 다 공개할 순 없지만, 이스라엘 당국의 허가를 받은 것과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외서 등에서 일부를 꺼내놓고자 합니다.

당신은 지금 국내 미번역 외서와 생생한 취재 뒷이야기를 전하는 국내 유일의 뉴스레터 ‘외설(ExTalk·엑스톡)’을 읽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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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예루살렘 한 호텔에서 이스라엘 핵 보유 사실 폭로자 모르데카이 베누누를 만나 이스라엘 핵개발 비사를 취재했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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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영국 일간 타임스 자매지인 ‘선데이 타임스’의 1986년 10월 5일자 1면에 세계를 뒤흔드는 기사가 실렸다. 이스라엘이 남부 네게브 사막의 디모나 지역에 대규모 핵무기 시설을 건설하고 핵탄두를 100개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핵시설 안팎을 몰래 찍은 사진도 여럿 실렸다.

이스라엘 핵개발 폭로 기사의 출처는 그 핵시설에 근무했던 이스라엘 핵과학자 모르데카이 베누누였다. 이스라엘이 핵을 보유한 것 같다는 의혹은 이미 외교가에 돌았지만 누구도 확인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다 핵 시설 내부자가 외신에 사진자료를 포함한 구체적인 증거물을 제시하여 핵폭탄 수준의 폭로를 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며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응했지만, 이스라엘이 ‘사실상의 핵무장국’이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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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선데이 타임스에 실린 이스라엘 핵시설 폭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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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과 함께 착수한 핵 개발

이스라엘의 핵 개발은 1948년 5월 건국과 함께 시작됐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아브너 코헨 교수가 쓴 ‘공공연한 비밀: 이스라엘의 폭탄 거래(The Worst-Kept Secret: Israel’s Bargain With the Bomb)’를 보면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은 건국할 때부터 핵개발에 집착에 가까운 의지를 보였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을 두 번 다시 겪지 않으려면 나라에 힘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 핵이라 봤다.

건국하자마자 주변 아랍 국가들과 전쟁을 치른 이스라엘이었다. 국가 존립의 위기는 현실 그 자체였다. 당장 내일이라도 적국의 침공에 어렵게 세운 조국을 잃을 수 있었다.

벤구리온은 유대인 핵과학자를 수배했다. 제1차 중동전쟁(1948년 5월~1949년 3월)이 한창일 때였다. 그는 비밀리에 미국과 유럽을 돌아다니며 유대인 과학자를 영입하기 위한 특별팀을 꾸렸다. 벤구리온은 유대인 핵과학자 오펜하이머가 미국을 위해 핵폭탄을 만들었으니 이번에는 유대 민족을 위해서 다시 한 번 핵개발에 참여해줄 것이라 판단했다.

이스라엘은 1949년에 군대 내에 비밀 핵과학 특수부대를 창설했다. 그리고 2년에 걸쳐 남부 네게브사막에 대한 지질 조사를 벌였다. 핵 연료인 우라늄의 매장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네게브사막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자 네게브 주민 사이에서 정부의 유전 지대 탐사가 개시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군이 일부러 유전 탐사 소문을 퍼뜨렸다는 설도 있다. 핵개발 활동이라고 의심받지 않도록 주의를 돌리려 했다는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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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학자 아브너 코헨 교수가 쓴 ‘공공연한 비밀: 이스라엘의 폭탄 거래(The Worst-Kept Secret: Israel’s Bargain With the B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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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차관까지 나서 스파이 영입

핵개발은 기술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피해서 핵시설 주요 장비의 부품과 연료 등을 운반해야 했다.

이스라엘은 의심 받지 않고 비밀리에 핵개발 작전을 수행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핵개발을 위한 특별정보조직이었던 ‘레켐(Lekem)’은 정부에 협조해줄 민간인을 찾아나섰다. 대표적인 인물은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사 뉴레전시 필름스의 회장 아르논 밀찬(Arnon Milchan)이다.

그는 1990년에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을 제작해 큰 성공을 거두고 ‘노예 12년’, ‘LA 컨피덴셜’, ‘파이트클럽’ 등 다수의 영화를 흥행시켰다. 그런데 이처럼 세계에서 손꼽히는 영화의 제작자가 실은 이스라엘의 핵개발 스파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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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여운 여인(프리티 우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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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논 밀찬의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그는 이스라엘 건국 4년 전인 1944년에 팔레스타인 르호봇 지역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스물한 살이던 1965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그는 물려받은 비료 공장을 화학 기업으로 전환했다.

비료로는 수익이 나지 않아 회사를 살려보려는 노력이었다. 심지어 런던의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며 회사 규모를 키워나가기 위해 발버둥쳤다.

레켐 관계자가 그를 찾아온 게 이 무렵이었다. 레켐 관계자는 나라를 위해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했지만 밀찬 입장에서는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이제 막 일으키려는 때였기에 선뜻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이때 훗날 총리와 대통령에 오르게 될 시몬 페레스 당시 국방부 차관이 찾아와 밀찬을 설득했다. 젊은 화학 기업 사장이 핵개발을 위한 국가 조직의 요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밀찬은 자기 소유의 화학 기업을 이용해 해외에서 화학 물질을 수입했다. 이때 선박에 비밀리에 군사 물자를 싣고 이스라엘군에 넘겼다. 그는 디모나 핵시설 건설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제공해줄 인사와 접촉해 협상을 하기도 했다.

그 대가로 정부는 국책 사업에 그의 기업 제품을 우선적으로 선정하며 매출을 올리는 데 도움을 줬다.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밀찬은 미국에 진출하여 주류 사회에 깊숙이 들어갔다. 고가의 선물을 아낌없이 주고 화려한 파티를 매일같이 벌였다.

밀찬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매우 대범하고 사교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농담을 좋아하고 툭하면 실없이 웃었다고도 전해진다. 그런 그를 스파이라고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밀찬은 만난 지 열흘밖에 안 된 프랑스 모델과 결혼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카지노도 자주 출입했다고 한다.

1977년에 미국 국적의 유대인 영화감독 엘리엇 카스트너가 밀찬을 할리우드 인사들에게 소개하며 미국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는 배우 로버트 드 니로나 감독 마틴 스콜세지, 올리버 스톤 등과 절친한 사이가 되면서 인맥을 빠르게 넓혀 갔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84년에는 로버트 드 니로를 주연으로 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제작했다. 감독이었던 세르조 레오네는 전부터 이 영화를 찍고 싶었지만 10년 넘게 제작자를 만나지 못해 포기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밀찬을 만나게 됐고 갱스터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영화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영화는 레오네의 유작이 됐다.

밀찬은 영화 일을 하면서도 스파이로서 작전을 수행했다. 1985년 무렵까지 핵탄두의 부품을 몰래 운송하거나 핵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비밀 요원의 활동 자금을 위한 은행 계좌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

영화사 외에 세계 17개국에 종합상사를 포함해 약 30개의 업체를 두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때는 군수물자를 영화 제작을 위한 소품이라고 하면서 밀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세계 최고의 톱스타와 어울리며 미국 사회의 각계각층과 인맥을 쌓았다.

미국 중견 핵과학자를 같은 유대인이자 유명 영화배우였던 리처드 드레퓌스의 집에 초대해 포섭하기도 했다. 영화 제작자라는 신분 덕분에 미국 내 첩보활동이나 핵물질 밀수에 관한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페레스는 대통령이던 2010년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르논 밀찬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내가 국방부에 근무할 때 그를 채용했지요. 그리고 군수물자 조달과 첩보활동에 관련된 여러 일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고위급에 접촉하고 인맥을 구축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스라엘 국익에 전략·외교·기술적으로 큰 보탬이 됐습니다.”

◇FBI의 집요한 추적과 스파이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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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논 밀찬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둘은 아주 가까운 사이다. /하욤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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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찬의 스파이 활동은 그의 소유인 헬리트레이딩(Heli Trading)과 미국 기업 밀코인터내셔널(MILCO International)의 크라이트론(krytron) 800개의 밀거래가 FBI에 적발되면서 미국 정부에게 포착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크라이트론이란 핵탄두 기폭장치를 뜻한다. 핵개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사건 당시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의 군수물자나 주요 무기 기술이 소련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단속을 지시한 바 있었다. 이렇게 갖춰진 촘촘한 수사망에 밀찬이 걸렸던 것이다.

FBI는 밀코인터내셔널의 켈리 스미스 회장을 군사상 금지품목의 불법거래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밀찬은 FBI 조사에서 스미스가 준 물건이 크라이트론인 줄 몰랐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해 기소를 면했다. 당시만 해도 밀찬이 이스라엘의 스파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진술을 다들 신뢰하는 분위기였다.

실없이 웃으며 놀기 좋아하는 그가 핵시설의 주요 장비를 수입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게다가 켈리 스미스 회장은 재판을 앞두고 아내와 함께 돌연 자취를 감췄는데 모사드가 회장 부부의 도망을 도왔다는 설이 있다.

스미스 회장은 그로부터 무려 16년이 지난 2001년 7월에 스페인 남부 말라가에서 포착되었고 현지 경찰에 체포당하여 미국으로 송환됐다. 미 연방법원은 그에게 징역 40개월에 벌금 2만 달러라는 이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바로 가석방 조치됐다. 어느덧 회장의 나이가 72세에 달했기 때문이다. 16년 동안 잘만 숨어 살다가 지금에서야 굳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도, 체포돼봤자 가석방 정도로 끝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일부러 발각돼 그때까지의 도망자 생활을 청산하려 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편 밀찬은 아슬아슬하게 기소 위기를 모면했지만 수상한 사람, 비밀스런 무기 거래상이라는 소문에 휩싸였다. 2010년에 이스라엘의 ‘채널2′와 미국 ‘CBS’가 각각 밀찬에 대한 취재에 들어가 그를 추궁하기도 했다.

밀찬은 CBS의 보도물 ‘60분’ 인터뷰에서 “내가 스파이었느냐고? 아니다. 나는 스파이가 아니었다”면서 단정적으로 의혹을 부인했다. ‘채널2′의 인터뷰 요청은 아예 회피했다.

하지만 밀찬은 자신의 비밀을 끝까지 숨기는 데 실패했다. 이듬해인 2011년에 이스라엘의 기자 메이르 도론과 조세프 젤만이 각종 문서와 증언을 바탕으로 ‘기밀-할리우드 거물이 된 비밀 요원의 삶(Confidential-The life of secret agent turned Hollywood tycoon)’이라는 책을 출간한 게 결정적이었다.

밀찬에 대한 취재에 실패했던 ‘채널2′의 일라나 댜얀 기자는 2013년 기어이 밀찬과의 인터뷰를 잡았고 그의 시인을 받아냈다. 이는 ‘채널2′의 시사보도물 ‘우브다’에 대대적으로 방영돼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밀찬은 그 인터뷰에서 자신의 스파이 활동에 대해 “조국을 위해서 했다”고 밝힌 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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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기자 메이르 도론과 조세프 젤만이 밀찬에 대해 쓴 책 ‘기밀-할리우드 거물이 된 비밀 요원의 삶(Confidential-The life of secret agent turned Hollywood tycoon)’. /노석조 기자


미국은 왜

그렇다면 어째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개발을 막지 못했을까요? 또는 그러지 않았을까요? 이 얘기도 할리우드 영화 저리가라 할 정도입니다. 이스라엘이 핵시설을 섬유공장으로 속이며 결정적 제지 타이밍을 넘기는 등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박정희 시대 한국의 핵개발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듯이 이스라엘의 핵개발에도 처음엔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다 미 국무부 장관이자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유대인’ 헨리 키신저의 쪽지 한 장이 ‘풍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강한 이스라엘 군대의 비밀(메디치 刊) 발췌.’)

국내 미번역 외서를 해제하고 각종 비사를 전하는 국내 유일의 뉴스레터 외설(ExTalk·엑스톡)은 다음 레터에서 봉인이 풀린 미 CIA 기밀 문서와 키신저가 닉슨 대통령에게 쓴 쪽지 내용 등을 공개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핵 개발 추격전을 외설 구독자님에게 독점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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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노석조 기자·조지타운대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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