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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그 영화 어때] ‘보통의 가족’ 장동건은 왜 급발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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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백수진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95번째 레터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 ‘보통의 가족’입니다. 16일에 개봉해서 이미 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가족들과 보면 끝나고 얘기할 거리가 많을 영화라 추천해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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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가족이지만 이들의 메인 요리는 따로 있다. 식탁 위에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 영상을 올려놓고 끔찍한 가족회의가 열린다. /하이브미디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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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행복하고 안온한 일상을 누리던 두 쌍의 부부가 자식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 영상을 발견하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원작은 세계에서 10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더 디너’로 네덜란드·이탈리아·미국에 이어 한국에서 네 번째로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 특히 잘 만들어진 작품들을 보면 ‘원작이 좋아서일까?’’얼마나 바뀌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이번엔 원작 소설과 비교해 영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번 레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았다면, 이 리뷰 기사를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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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통의 가족'에서 형 재완(설경구)은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며 살인자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이브미디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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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주인공들의 직업입니다. 영화에서 형 재완(설경구)은 잘 나가는 대형 로펌 변호사, 동생 재규(장동건)는 양심적이고 존경받는 의사죠. 영화 초반부에서 벌어진 교통사고에서 동생은 교통사고로 실려온 환자를 살리고, 형은 교통사고를 낸 가해자를 변호합니다. 두 형제의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명확히 보여주죠. 남부러울 것 없던 두 쌍의 부부가 자식들이 연루된 노숙인 폭행 영상을 보게 되면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끔찍한 가족회의가 열립니다. 아이들을 경찰서로 데려갈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건을 덮을지를 놓고 네 사람의 신념이 쉴 새 없이 충돌합니다.

네덜란드가 배경인 소설에서 형은 유명 정치인이자 다음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수상 후보자입니다. 형은 석 달 전부터 예약해야 하는 최고급 레스토랑을 당일에 예약하는 걸 스포츠처럼 즐기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이름만 대면 놀라면서 테이블 하나쯤은 내줄 거라고 생각하죠. 선거를 반년 앞둔 시점, 아이들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면 수상 자리는 물론 정치 생명이 끝장날 겁니다. 영화를 볼 때는 ‘형제가 의사, 변호사에 저렇게 부유한데 뭐가 ‘보통의 가족’이라는 거야’ 싶었는데 소설을 보니까 알겠더군요. 원작에 비하면 훨씬 더 ‘보통의 가족’ 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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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재규(장동건)는 양심적인 소아과 의사로 원리 원칙을 중요시 여기지만 자식 문제엔 어쩔 수 없이 흔들린다. /하이브미디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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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동생의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동생은 전직 역사 교사로 어딜 가나 형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게 못마땅합니다. 독자는 처음부터 동생의 머릿속 생각을 다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초반부부터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동생에 대해 ‘얘 좀 이상하네?’ 눈치 챌 수 있게 됩니다. 그에 비해 영화는 중반부까지 정의롭고 선량해 보이던 동생이 의외의 결정을 내리면서 “갑작스럽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작을 들여다보면 동생의 마지막 행동이 조금 더 이해가 갑니다. 아이들의 범죄에 집중해 간결해진 영화에 비해, 소설은 폭력의 유전에 대해서 더 깊게 다룹니다. 불쑥불쑥 동생의 폭력적인 성향이 발현되면서 정신과에 가게 되고, 유전 질환일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을 받죠.

영화에서도 폭력성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암시가 몇 번 나옵니다. 치매 걸린 노모가 버럭 화를 내는 아들 재규(장동건)를 보면서 남편인 줄 착각한다거나, 아들을 닮은 손자를 가리키며 쟤가 겉보기엔 순해 보여도 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장면에서요. 재규의 마지막 행동은 반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감춰져 있던 폭력성이 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에선 의도적으로 정의롭고 선량해 보이는 그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여줬기 때문에 쉽게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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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노숙자 폭행 영상을 보게 된 부부는 가해자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한다. /하이브미디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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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원작에는 있지만, 영화가 다루지 않은 것은 세 번째 아이입니다. 영화에서는 형의 딸과 동생의 아들 두 명이 등장하지만 소설에서는 형이 아프리카에서 입양한 아이가 한 명 더 있습니다. 동생은 형의 입양이 “와인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장식품”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 출신의 아이를 입양한 정치가”가 되면서 선한 이미지와 커다란 명예를 얻었다는 거죠. 소설은 입양된 아이와 친자식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도 피와 살을 물려받는다는 것, 유전의 섬뜩한 면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영화에서는 지수(수현)가 새엄마로 나오면서 아이들이 벌인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연경(김희애)에게 “친자식이었어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냐”는 비난을 받게 되죠. 인종 차별이나 입양 같은 문제는 생략하고, 소년범이나 학교 폭력, 교육열, 자식에 대한 집착 등 한국적인 상황을 녹여 매끄럽게 각색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와 소설 둘 다 각자의 매력이 뚜렷해서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 ‘더 디너’도 함께 추천하면서 이번 레터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에 또 좋은 영화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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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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