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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미술의 세계

한강신드롬에 100년전 ‘천재 시인’까지 소환…검색량 폭증한 이 사이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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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포니정 혁신상’ 수상

“지난 한주 특별한 감동으로
삶의 고요 달라지지 않을것”

연세대 석사논문 관심 폭발
1주새 검색량 10년치 넘어
천재시인 이상 자화상 분석


매일경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맨 왼쪽)가 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한강 작가가 재단 이사장인 정몽규 HDC 회장(가운데), 고(故) 정세영 HDC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박영자 여사(맨 오른쪽) 등과 인사말을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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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신드롬’의 거센 열기가 학계로 옮겨붙었다. 한강 작가의 유일한 공개 논문의 검색량이 노벨문학상 수상 후 일주일 만에 ‘이전 10년치 검색량’을 넘어서서다.

현재 한강 작가의 책은 재고 소진으로 구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학위논문은 온라인 논문검색 사이트에서 무료 공개돼 있는데다가 노벨문학상 작가의 초기 사유를 손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논문 검색량이 ‘폭주’한 것으로 분석된다.

17일 논문검색 웹사이트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를 보면, 한강 작가의 연세대 국문과 석사학위 논문 ‘이상(李箱)의 회화와 문학세계’의 총 누적 조회수는 약 1600회에 달한다. 2022년 1년간 이 논문의 조회수는 12건, 작년엔 21건에 불과했는데 2024년 올해 조회수는 754회(이날 정오 기준)에 달한다. 한강 작가가 김영식 연세대 교수의 지도 하에 이 논문을 써서 발표한 건 2012년. RISS의 검색 조회 통계는 2014년부터만 가능한데 올 한해 조회수가 직전 10년치 조회수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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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사학위 논문은 박제된 천재시인 이상(1910~1937)이 19세, 21세 때 그린 자화상 두 점을 시작으로, 이상의 드로잉 작품, 소설 ‘날개’에 수록된 삽화에 담긴 회화적 의미를 한강 작가의 시각으로 재조명한 독특한 글이다.

이상 누이동생 옥희의 증언에 따르면, 이상이 19세 때 그린 유화 자화상 한 점은 시인 이상이 통인동 백부 집 사랑채에서 그렸고, 두 번째 유화 자화상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돼 입선한 작품이다.

‘대학원생’ 한강은 두 그림을 면밀히 검토하며 공통점을 포착하는데, 바로 자화상 한쪽 눈에 그려진 ‘공동(空洞, 텅 빈 구멍)’이다. 한강 작가는 당시 “왼쪽 눈을 검게 칠해서 눈동자를 볼 수 없다. 이상 자화상에 그려진 얼굴의 지배적 인상은 주눅든 듯한 측은함을 띠고 있는데, 자기 연민과 짓눌린 감정이 읽힌다”고 썼다. 이어 “이는 단순한 우울이나 존재론적인 피로감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을 구성하는 복합적인 의식구조와 연관된다”고도 덧붙였다.

한강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의 두 번째 작품인 ‘몽고반점’의 마지막 장은, 영혜가 나체로 베란다에 서는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 영혜의 육체를 탐한 형부는 ‘아무것도 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시선’의 그녀를 바라보다가,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학계에선 바로 이 장면이, 이상의 소설 ‘날개’의 주인공 ‘나’가 명동 미쓰코시백화점 옥상에 서서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고 독백하는 마지막 장면의 ‘오마주’라는 평이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이상 문학과 한강 문학의 연관성를 염탐하는 좋은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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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석사학위 논문 ‘이상(李箱)의 회화와 문학세계’ 앞부분. [R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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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1인칭 목소리’가 담긴 글이 흔치 않은 상황에서,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한강 작가의 5페이지짜리 글 ‘문학적 자서전’도 한강의 초기 문학을 들여다보기에 훌륭한 글이다.

한강 작가는 이 글에서 임신 4개월이었던 어머니께서 실은 뱃속의 그녀를 지우려 병원에 갔었기에 “하마터면 넌 못 태어날 뻔했지”라고 친척들에게 듣고 자랐던 기억, 초교 시절 5번을 전학을 다녔지만 삶의 자리는 늘 책장 옆이었다는 사실, 아버지 한승원 작가에서 타이프라이터(타자기)를 선물받은 경험 등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잡지사 ‘출판저널’과 ‘샘터’ 재직 시절엔 “늘 졸리고 피곤했지만 하루 서너 시간만 자면서 시와 소설을 썼다”면서 그는 ‘나는 존재하느라 으깨어진 것 같아요’라는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을 인용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 한강 작가는 또 “나는 내 소설에서 살을 발라내고 싶어했었다. 침묵과 절제 속에서 나무들의 흰 뼈 같은 정갈한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었다. 그 걸음을 돌려세운 것은 바로 그 악몽들이었다. 그 꿈들의 끔찍함은 다름아닌 삶의 피비린내였다”라고 썼는데, 당시 한강 작가의 나이 고작 만 34세였다.

한편 한강 작가는 17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공식 행사에 등장한 건 처음이라 관심을 모았다.

HDC그룹(옛 현대산업개발)의 비영리재단인 포니정재단은 매년 매일경제신문과 공동 주관으로 포니정 혁신상을 주고 있다. 포니정 혁신상은 현대자동차 설립자인 고(故) 정세영 HDC그룹(옛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애칭인 ‘포니정’에서 이름을 따 2006년 제정된 상이다.

포니정재단과 매일경제신문은 지난달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주인공으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 당시 정몽규 이사장은 “한강 작가는 등단 이후 국내는 물론 외국 독자의 공감대까지 불러일으키는 흡인력으로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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