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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복통에 7시간 응급실 뺑뺑이…끝내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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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방문한 병원선 “이상 없어”…진통제만 투약 후 귀가

증상 악화로 응급실 찾다 복막염 판정, 수술 위해 2차 뺑뺑이

거제서 부산까지 달려가 수술했지만 결국 사망…유족 “허망”

경향신문

지난달 아버지 치료를 위해 응급실을 찾던 딸 이슬씨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며 온라인에 남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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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경남 거제조선소에서 일하는 박동원씨(54·가명)는 웃으며 일터로 향했다. 딸 이슬씨(25·가명)는 여느 때처럼 출근 인사를 건넸다. 그날이 아빠의 마지막 출근이 될 줄은 몰랐다.

16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당시 응급처치와 수술 가능한 곳을 찾아 두 차례나 ‘응급실 뺑뺑이’를 겪은 뒤 끝내 숨졌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 취약한 지역·필수의료 문제가 박씨의 죽음에 모두 녹아 있었다.

그날 오후 8시쯤, 박씨는 퇴근길에 갑작스레 복통을 호소했다. 동료 차를 타고 가까운 A병원을 찾아 진통제를 맞았다. 병원은 CT(컴퓨터단층촬영)와 엑스레이, 피 검사를 진행한 뒤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내렸고 박씨는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온 박씨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이슬씨는 아버지가 갔던 A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혹시 진통제 부작용이 아닌지 물었다. 병원에서는 직접 와봐야 알 수 있다고 했고, 새벽 3시에 가족들은 119 구급대를 불렀다.

박씨를 받아주는 응급실을 찾기는 어려웠다. 병원에 와봐야 부작용을 확인할 수 있다던 A병원조차 박씨를 받지 않았다. 구급대는 거제 지역과 인근 진주·부산·창원의 병원 10곳에 환자 이송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약 1시간 동안 병원을 수소문했지만 허사였다. A병원 측은 당시 박씨를 거부한 이유 등을 묻자 “해당 환자를 담당했던 의사가 현재 부재중이라 확인이 불가능하다”고만 답했다.

구급대가 소속된 거제소방서 관계자는 “당시 10개 병원이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며 “구체적인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슬씨는 다급한 마음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튿날 새벽 4시 반쯤 거제 소재 B병원에서 진통제라도 놔줄 테니 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B병원에서 박씨는 다시 검사를 받아 급성 복막염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면서도 “수술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B병원 응급과장이 수술 가능한 병원을 찾아 70분간 수차례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의사가 없다” “지금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뿐이었다. 두번째 ‘뺑뺑이’를 도는 사이 박씨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열이 심해졌고 혈압이 떨어졌다. 폐렴 증상도 나타났다.

오전 8시 부산 소재 C병원에서 박씨의 수술 허가가 떨어졌다. 사설 구급차를 불러 거제에서 부산까지 약 64㎞를 1시간30분간 이동했다. 이송 중 박씨의 의식은 점차 옅어졌다. 박씨는 오전 10시30분이 돼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박씨가 복통을 호소한 지 14시간, 119에 신고한 지 7시간이 지나서였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지만 이미 다른 장기가 망가진 뒤였다. 박씨는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달고 지내다 이틀 뒤 심정지로 사망했다.

이슬씨는 “아버지가 (뺑뺑이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점점 의식을 잃었다”며 “어디에다 어떻게 이 억울함을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 사례를 두고 “응급실 뺑뺑이 문제와 지역·필수의료 부족 문제가 모두 혼합된 문제로 보인다”고 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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