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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부정수급’ 낙인 시각장애인…숨진 지 42일 만에 땅에 묻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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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6일 오후 의정부시청을 항의 방문한 고 장성일(44)씨의 두 고교생 아들이 20대 시절 장씨 사진과 위패를 들고 시장실 앞에 서 있다. 김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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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일 원장님, 우리 시각장애인에게 큰 메시지를 주고 떠나셨습니다. 자립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게 무슨 잘못입니까.” (김영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



지난달 4일 자신이 운영하던 안마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각장애인 고 장성일(44)씨가 숨진 지 42일 만인 16일 발인식을 치르고 마침내 땅에 묻혔다. 추도사가 시작되자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과 위패를 든 고등학생 두 아들은 고개를 숙였고, 고인의 노부모는 소리 내어 울었다. 그 곁에 선 수많은 시각장애인의 보이지 않는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이날 오후 장씨의 주검은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을지대병원 장례식장을 출발해 장씨가 운영하던 안마원 건물을 한 바퀴 돈 뒤, 의정부시청을 거쳐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 묻혔다. 장씨의 두 아들 뒤를 유족이, 그 뒤를 동료 시각장애인들이 따랐다.



장씨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로, 경기 의정부시의 홀로 운영하던 안마원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한겨레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유족과 의정부시청 설명을 들어보면, 장씨는 안마원을 운영하는 데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은 사실이 지난 8월 시청에 적발됐다. 장씨는 시청으로부터 ‘지난 5년 동안의 활동지원급여 약 2억원이 환수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민형사상 책임도 질 수 있다’는 경고를 받은 뒤 목숨을 끊었다. 장씨가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에는 ‘삶의 희망이 무너졌다. 현실하고 행정하고 하나도 안 맞고.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 하니 너무 허무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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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성일(44)씨가 숨지기 하루 전인 지난달 3일 자신의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 김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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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활동지원사가 수급자의 생업을 지원할 수 없도록 제한한 ‘장애인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16조와 관련돼 있다. 활동지원사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막기 위한 규정인데, 영세한 장애인 1인 사업주로선 대개 새로 직원을 고용해 장애로 인한 업무 불편을 해소할 여력이 없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제도 내용조차 제대로 안내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시각장애인 단체들의 설명이다.



유족은 의정부시가 조사 경위를 제대로 밝힐 것과 정부의 제도 개선 약속을 요구하며 장례를 미뤄 왔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대한안마사협회에 속한 시각장애인 회원 3천여명은 지난달 24일 국회 앞에 모여 장씨의 죽음을 애도하고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겨레

16일 오후 의정부시청을 항의 방문한 고 장성일(44)씨의 유족과 동료 시각장애인들이 시청 본관 정문 앞에서 추도사를 듣고 있다. 김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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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유족과 시각장애인들은 장씨가 숨진 뒤에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은 의정부시청을 항의 방문했다. 격분한 이들이 “장씨 조사 과정에 (강압 등) 문제가 없었는지 모두 공개하라”, “(42일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느냐”며 시장 면담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고성과 몸싸움이 오가기도 했다. 김동근 의정부시장은 유족 및 시각장애인 단체 대표들과 면담을 마친 뒤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지키기 굉장히 어려운 제도 때문에 이런 문제가 불거졌다”며 “우리가 두고두고 풀어야 할 숙제다. 조사 과정 자료도 모두 유족에 공개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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