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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화)

[설왕설래] 사상 초유의 대리 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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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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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개봉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뮬란’은 중국 남북조 시대(386∼589년)가 배경이다. 그 시절 북위(北魏) 정권은 북쪽에서 끊임없이 침략을 시도하는 이민족 때문에 안보 위기를 느껴 전국 남성들에게 징집령을 내린다. 애니메이션은 병약한 아버지 대신 외동딸 뮬란이 남장하고 군대에 입대한 뒤 겪은 파란만장한 사연을 그린다.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주인공의 지극한 효심 덕분인지 흥행 면에선 제법 성과를 거뒀다.

조선 시대에 봉족(奉足)이란 제도가 있었다. 그 시절 16세 이상 60세 이하 평민 남성에겐 병역 의무가 부과됐다. 하지만 대상자 모두가 현역으로 군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봉족이 되면 본인은 입대하지 않는 대신 군인들의 복무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돈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국가 재정이 보잘것없던 시대에 방위력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병역 당국과 육군은 2003년 동반 입대 제도를 도입했다. 혼자가 아니고 형제, 친구 등 지인과 함께 입영해 훈련 기간은 물론 자대 배치 후에도 같은 부대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힘든 군 생활 내내 서로에게 의지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하자는 취지인데 청년들 사이에 반응이 제법 좋다는 후문이다. 낯선 곳에서 바로 곁에 낯익은 얼굴이 있다면 얼마나 위안이 되겠는가.

지난 7월 “병사 월급을 반씩 나눠 갖자”고 약속한 뒤 다른 사람 대신 입대한 20대 남성이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는 소식이 그제 전해졌다. 1970년 병무청 개청 이래 처음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피고인은 검찰 조사에서 “병사 월급이 적지 않은 데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입대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려고 병사 급여를 올린 것은 아닐 텐데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그는 병역 이행을 위해 입대했다가 정신건강 문제로 전역한 이력도 있다고 한다. 병무청이 “앞으로 홍채 인식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입대자 신분 확인을 더 철저히 할 것”이라고 했으나 영 미덥지가 않다. 가뜩이나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가중되는 와중에 다시는 이와 같은 실수가 반복되어선 안 되겠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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