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영업이익 1조…기세가 가파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기업마다 비상경영에 돌입했지만 국내 대표 해운사 HMM은 예외다. 상반기 1조원 영업이익을 낸 데 이어 하반기 이익도 급증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KDB산업은행이 추진한 매각 작업이 무산돼 새 주인 찾기에 실패했지만 HMM은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양상이다.
HMM 실적이 뚜렷한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HMM 선박. (HMM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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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상반기 영업이익 1조 냈는데
3분기에도 호실적 이어질 듯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HMM은 3분기 매출 3조1899억원, 영업이익 1조246억원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NH투자증권은 HMM의 3분기 영업이익이 1조61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무려 1300%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2분기 영업이익은 644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2% 상승하면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상반기 전체로 보면 1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올려 영업이익률이 21.1%에 달했는데 하반기는 분위기가 더 좋다는 의미다.
HMM 실적 전망이 밝은 것은 주력 노선인 미주, 유럽 노선 운임이 뛰면서 3분기 해상 운임 상승세가 두드러진 덕분이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3분기는 해상 운임 상승 효과가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시기라 HMM 실적 개선이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HMM 실적 개선 기대가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 수요도 몰리는 모습이다. 외국인은 지난 9월 23일부터 10월 2일까지 7거래일 동안 HMM 주식을 583억3700만원어치 순매수했다. SK하이닉스, 현대차, 삼성바이오로직스, 신한지주, 삼성생명, 포스코홀딩스 등에 이어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산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덕분에 HMM 주가도 서서히 반등하는 양상이다. 9월 초까지만 해도 1만6000원대에 그쳤지만 최근 1만7000원대를 넘어 2만원을 향해가는 모습이다(10월 8일 종가 1만7060원).
여세를 몰아 HMM은 대대적인 투자 계획까지 내놨다. 2030년까지 총 23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중장기 성장 전략이다.
일단 컨테이너선 부문에 12조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중 액화천연가스(LNG), 메탄올 등을 동력으로 하는 친환경 선박 확대에만 11조원을 쏟아붓는다. 쟁쟁한 글로벌 선사와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다. 선복량은 현재 84척, 92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규모에서 2030년까지 130척, 155만TEU로 두 배가량 늘린다. 늘어나는 선복량 확장에 맞춰 컨테이너 확보에 나머지 1조7000억원을 쓴다.
그동안 HMM의 비주력 사업이던 벌크선 사업도 대대적으로 키우기로 했다. 현재 634만DWT(순수 화물 적재 톤수, 36척)의 선대를 2030년까지 1256만DWT(110척)까지 확장하는 데 5조6000억원을 투자한다.
벌크선은 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실을 수 있는 화물 전용선으로 철광석, 유연탄 등 원자재를 주로 실어 나른다. 경기에 민감한 컨테이너선과 달리 해운업 불황에도 안정적인 이익을 내며 실적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HMM의 컨테이너와 벌크선 사업 비중은 6 대 4 정도로 큰 차이가 없었다. 컨테이너선에 주력해온 HMM은 글로벌 해운 업황이 악화되자 벌크선 사업을 잇따라 매각했다. 지난해 HMM 매출 8조4010억원 중 벌크선 사업 비중은 14.7% 수준에 그쳤다. 대신 컨테이너선 부문 의존도가 80%를 넘어 사업 편중이 심하다는 우려가 컸다. 결국 수익성 회복을 위해 벌크선 사업 비중을 다시 늘리는 모습이다.
이뿐 아니다. 통합 물류 사업을 위해 신규 터미널, 시설 투자에도 4조2000억원을 투자한다. 기존 항만 터미널을 확장하는 한편 주요 거점 항만 터미널을 추가로 확보해 서비스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김경배 HMM 사장은 “2030년 매출 15조540억원, 자산 규모 43조2000억원을 달성해 한국 대표 종합 물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목표 매출과 자산은 지난해 말보다 각각 82.9%, 68% 늘어난 규모다.
해운동맹 재편 효과 기대
MSC와 선복 교환 성과 낼까
HMM이 야심 찬 목표를 내놓은 것은 우여곡절 끝에 해운동맹을 새로 재편한 덕이 크다.
세계 2위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5위 독일 하파그로이드가 내년 2월부터 ‘제미니 협력’이라는 새로운 해운동맹을 창설하기로 하면서 HMM은 비상이 걸렸다. 머스크는 당초 세계 1위 해운사 MSC와 ‘2M’ 동맹을 맺었지만 최근 이 동맹을 전격 해체하기로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운송 호황이 끝나고 해운업계가 선박 공급 과잉, 급격한 운임 하락에 내몰리면서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진 탓이다.
HMM이 소속된 해운동맹은 ‘디얼라이언스’다. 그동안 하파그로이드가 HMM과 함께 디얼라이언스에 포함돼 있었지만 내년에는 탈퇴하고 새 동맹을 만든다는 의미다. 디얼라이언스에서 선복량이 가장 많고 핵심 노선인 유럽 항로를 담당하는 하파그로이드가 탈퇴하면 이 동맹에는 일본 ONE, 대만 양밍 등 아시아권 선사만 남는다.
해운동맹은 선사에 허용된 일종의 ‘카르텔’로 불린다. 동맹을 맺은 기업끼리 항로, 선박, 항만 터미널을 공유해 원가를 절감하고 화주 상대 영업도 확대할 수 있다. 새로운 해운동맹을 맺지 않을 경우 HMM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논란이 커지자 HMM은 새 해운동맹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를 활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는 기존 디얼라이언스 소속이었던 HMM, 일본 ONE, 대만 양밍이 내년 2월부터 협력하기로 합의한 새로운 동맹이다. 독일 선사 하파그로이드가 탈퇴한 점만 빼면 선사 구성은 동일하지만, 유럽 항로에 한해 세계 1위 선사 MSC와 선복 교환 방식으로 협력하는 점이 다르다. 선복 교환이란 운항하는 선박의 컨테이너 선적 공간을 다른 해운사와 서로 맞바꿔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HMM은 이른바 ‘프리미어 얼라이언스+MSC’ 체제를 통해 사실상 4자 얼라이언스 구축과 유사한 네트워크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한다. 기항하는 항만, 국가가 확대되고 운용 선복량도 늘어 서비스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 디얼라이언스 체제에서는 26개 항로를 운영했다면 MSC와 협력 체계를 가동하는 내년 2월부터는 운영 항로가 30개로 늘어난다. 지역별로는 미주서안 12개, 미주동안 4개, 북유럽 6개, 지중해 5개, 중동 3개다. HMM 측은 “신규 해운동맹에 독일 하파그로이드가 빠졌지만 MSC와 선복 교환 협력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글로벌 동맹 중 가장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HMM 분위기가 되살아났지만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적이 좋아져 몸값이 치솟으면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매각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HMM은 지난 2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과의 협상이 최종 결렬돼 매각 작업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글로벌 해상 운임 흐름이 불안한 만큼 실적이 계속 상승 곡선을 그릴지도 미지수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해상운송항로의 운임 수준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9월 28일 기준 2135.08로 집계됐다. 앞서 8월 30일 지수가 2963.38에 그쳐 5월 24일 이후 석 달 만에 3000선 밑으로 내려가더니 최근에는 2000선마저 불안한 양상이다.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 물량이 줄어들면서 운임이 하락세를 보이는 만큼 향후 HMM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도 크다. 양지환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올 4분기부터 내년까지 글로벌 컨테이너선 공급 과잉 여파로 운임 하락 가능성이 높아 HMM 주가 상승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0호 (2024.10.16~2024.10.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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