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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매경춘추] 퇴직연금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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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차 베이비붐 세대(약 700만명)가 대부분 이미 퇴직했고, 2차 베이비붐 세대(약 950만명)도 퇴직을 앞두고 있다. 2023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0.72명까지 하락하며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한 자산 증식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은 대표적 투자 수단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변동성이 매우 커 장기적인 재정 확보 수단으로는 위험이 큰 편이다. 특히 부동산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지난 몇 년간 가격 상승·하락을 반복했고, 인구 감소가 본격화된 현시점에는 추세를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경제 상황이나 정책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반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금리 기조와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한층 더 증대시키고 있다.

노후 생활의 재정적 보장은 흔히 '3층 보장'으로 이뤄진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인 생활을, 퇴직연금은 평균 수준의 생활을, 개인연금은 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지원하는 구조다. 이 중 퇴직연금은 오랜 기간 동안 퇴직 후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중요한 재정 수단으로 평가받아왔다.

퇴직연금은 정부의 규제와 금융기관의 철저한 관리 아래 안전하게 운영되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공격적 투자 상품에 비해 변동성이 작아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도 안정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퇴직연금은 예금, 이율보증형보험(GIC), 펀드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함으로써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복리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은퇴 후 생활 자금을 보다 안정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

근로자의 퇴직급여 '보장' 본연의 목적은 안정에 근거한 수익률 확보에 있다. 은퇴 후에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소득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은 변할 수 있지만, 생활비와 의료비 같은 필수 지출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퇴직연금의 안정성은 은퇴자의 경제적 안정을 지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2023년 기준 디폴트 옵션 통계에 따르면, 퇴직연금 가입자의 약 90%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선택했다. 이는 근로자들이 큰 수익보다는 자산의 안전한 보호에 더 큰 가치를 둔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최근에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자는 제안들이 있지만, 제도의 본질적 목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2022년과 2023년 실적 배당형 상품의 수익률은 각각 -16.9%와 14.4%로 큰 변동을 보였으며, 장기적으로도 원리금 보장형 상품과 실적 배당형 상품 간 수익률 차이는 크지 않았다. 특히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참여는 민간 금융기관과의 형평성 문제를 초래할 수 있어 충분하고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해외에선 실적 배당형 투자로 높은 수익을 올린 사례가 있지만 국내 금융시장의 특수성, 특히 단기 위주의 투자 성향을 고려할 때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키코(KIKO)나 ELS 사태와 같은 불완전판매 사건도 참고해야 한다.

퇴직연금의 궁극적 목적은 안정적인 노후 생활 보장에 있으며, 단기적인 수익률을 좇아 자산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전용범 한국보험계리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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