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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불온서적이 노벨상을 받았다 [똑똑!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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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4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마련된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설치물 인근에서 시민들이 ‘소년이 온다’ 등 작가의 책을 살펴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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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혜린 |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나는 2008년에 입대했다. 20세기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엄혹한 야만의 시대였다. 그때만 해도 군대에선 사람은 육체적으로 가혹한 행위를 당해야만 말을 듣는다고 가르쳤다. 때로는 맞기도 했다. 어쨌든, 잘못하면 당연히 그래야 했던 시기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얼차려나 체벌이 무섭진 않았다. 물론 고통스러웠지만, 공포스럽진 않았단 뜻이다. 내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다름 아닌 ‘검열’이었다. 21세기에도 개인의 사상을 검증하는 게 당연히 할 수 있는 조치라고 여겨지는 것이 무서웠다. 군대는 우리가 어떤 책과 신문을 구독하는지, 수업에서는 무슨 말을 듣는지 모두 확인했다. ‘군내 불온서적 차단 대책 강구(지시)’라는 이름의 공문이 내려왔고, 생도들의 책꽂이 하나하나가 철저하게 검열됐다. 바로 2008년 국방부 불온서적 사건이다.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서적은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세 분류 총 23권이었지만, 일선 부대에서는 비슷하다 싶으면 모두 불온서적으로 분류해 과잉 검열했다. 특정 신문을 구독한다는 이유로 지휘부가 생도를 소환하기도 했다. 사상이 편향됐다는 이유에서였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양한 관점을 살펴보고자 보수, 진보 언론사 모두 구독한다는 항변은 씨도 먹히지 않았다. 나의 사상이 불손했으며 구독을 포기하겠다는 억지 인정을 받아내고서야 부대의 추궁이 끝났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동안 검열은 비단 군대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이뤄졌다. 익히 알려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그 대표적인 사건이다.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통해 총 8931명의 문화예술인이 검열 대상으로 관리됐다는 것이 확인됐다. 검열을 넘어 공연한 민간인 사찰도 부지기수로 이뤄졌다. 기무사(현 방첩사령부)가 군인도 아닌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민간인 사찰을 벌인 행위는 유명하다. 당시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지시한 자는 공판 자리에서 “대통령 국정운영 보좌 기관이라는 사명감”으로 사찰을 자행했다고 항변했다. 정권을 보위하기 위해서라면 높으신 분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들, 그러니까 보수 정권 지도자의 가치에 배치되는 것,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것, 저항의 역사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 그래서 수구 세력에 도전할 여지가 있는 그 모든 가능성은 적극적으로 차단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것이 충성이고 국가 기관의 책무라고 여겼다. 검열로 인해 삭제당한 것의 빈자리는 정권이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 채워졌다. 뉴라이트 계열의 대안 역사 교과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친일파 장군의 자서전 같은 것이 필독도서로 지정됐다.



며칠 전 10월10일,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속보를 탔다. 한국인으로서도 처음, 아시아 여성으로서도 처음인 한국 문학의 대단한 쾌거다. 하지만 한강 작가는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8931명 중 하나였고, 검열된 그의 책은 정부가 주관하는 우수도서 선정과 보급 사업에서 번번이 제외됐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상을 탄 작가에게 축전 보내길 거부했다. 심지어 최근까지도 학부모단체의 민원 세례로 인해 책 ‘채식주의자’가 유해도서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는 중이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공동 번역가 페이지 아니야 모리스는 한강에 대해 “몇번이고 검열에 맞섰으며 매번 더 강하고 흔들림 없는 작품으로 자신을 침묵시키려는 시도를 떨쳐낸” 작가로 평했다. 그렇게 보수 정권이 꺾어 누르고 싶었던, 계속 검열하고 삭제해 다른 것으로 바꿔두면 결국 알아서 사라지겠거니 한 가치들이 끝내 살아남아 승리했다.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 국가폭력의 상흔을 지적하는 것에 ‘빨갱이’, ‘북한 찬양’과 같은 것으로 때려버리면 그만이라 여겼던 이들이 형편없이 지고 만 것이다. 5·18, 4·3과 같은 “역사적 상처에 직면한” 불온서적이 노벨상을 받았다. 직면하고 저항하려는 쪽과 보기 싫은 건 지우고 무시하면 된다는 쪽, 과연 이제 불온하므로 대체되어야 하는 가치는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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