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주중대사로 내정된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23년 5월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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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관계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신호다.”
김대기 전 비서실장이 14일 차기 주중 대사로 내정되었다는 발표를 들은 한 한중관계 전문가의 탄식이다. ‘대통령의 친구’인 정재호 현 주중대사는 그동안 ‘갑질 논란’을 비롯해 중국과의 외교에서도 여러 문제를 일으켰기에 대사 교체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어왔다. 그동안 한석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원희룡, 박진 전 장관, 왕윤종 안보실 3차장 등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결국 초대 비서실장인 측근을 주중대사로 선택했다. 주중대사가 ‘대통령의 친구’에서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14일 기자가 취재한 복수의 한중관계 전문가들은 익명을 요구하면서도, “주중대사가 대통령 측근에게 그냥 주는 논공행상 자리가 돼버렸다” “지금 한반도 정세를 관리해야 하는 데 그럴 뜻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인사”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큰 문제는 김대기 주중대사 내정자가 현재 한중관계에서 최고 현안인 북한 문제를 풀 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경제 관료’라는 점이다.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 북러 밀착, 남북 관계 악화 속에서 북한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외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인데, 김대기 대사 내정에는 그런 고민이 전혀 담겨있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김대기 주중대사 임명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랜 기간 경제부처에서 근무하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무역 갈등 해소 등 중국과 경제 협력 사업을 추진한 정책 경험이 풍부하다.” “김 내정자는 평소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한-중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중국의 사회 역사, 문화에 천착해 왔을 뿐 아니라 수준급의 중국어 구사력도 갖췄다.” 경제관료 출신인 김대기 대사 내정자와 중국의 인연을 애써 강조했지만, 복잡한 한반도 안보 정세를 중국과 논의할 전문성과 경험이 없는 인사라는 점이 오히려 더욱 도드라진다. 한 외교 전문가는 “최근 남북 긴장 상황을 보면 중국도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매우 우려하고 주목하고 있다. 주중대사가 중국과 이런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김 대사 내정을 보면 정부가 한반도 문제를 신중하게 관리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했다. 또다른 한중관계 전문가도 “지금 정무적 감각을 가지고 정세의 큰 가닥을 풀어야 하는 상황인데 이해가 안 가는 인사”라고 말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신임 주중 대사로 전임 대통령 비서실장을 내정한 것은 우리 외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함과 동시에 최근 활발히 가동되고 있는 한중 고위급 교류의 흐름을 이어 양국관계를 더욱 성숙하게 발전시키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대통령 측근인 비서실장을 보내는 것은 그만큼 우리 정부가 한중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동안 류우익·권영세·김장수·노영민·장하성·정재호 주중대사가 대통령의 비서실장, 안보실장 등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임명된 대사들이다. 그때마다 대통령의 측근을 임명해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중국과의 외교는 제대로 되지 않고 한중관계를 악화시키거나 외교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중국은 이런 경험의 학습을 거쳐 더이상 한국의 ‘비서실장 대사’에 대한 기대가 없다.
이번 김대기 대사 임명 이후, 3개월째 공석인 차기 주한 중국 대사 인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지난해 싱하이밍 전 주한중국대사의 이른바 ‘베팅' 발언 이후 한국 정부와 여당은 싱하이밍 대사를 기피인물 취급했고, 싱 대사는 지난 7월 귀국했다. 한중관계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번에는 한반도통 외교관이 아닌, 다른 지역 전문 외교관을 주한대사로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 근무하고 있는 유럽통 외교관이 한국대사로 임명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중관계 차원이 아닌 미국 등을 고려한 국제관계 차원에서 한반도를 다루겠다는 의도이고, 미국 대선 결과를 본 뒤 결정할 것이란 뜻”이라고 한 전문가는 예상했다. 윤석열 정부와의 한중 외교에는 큰 기대가 없고, 한국과의 관계는 미-중 관계의 큰 틀 속에서 관리하는 정도로 다루겠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주한 중국대사를 북한과 마찬가지로 차관급으로 급을 높이라는 요구를 해왔는데, 중국이 이번 인선에서 이를 반영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한중일 정상회의 등을 계기로 한중관계가 개선되었다고 강조하지만, 실제 한중관계는 여전히 냉랭한 ‘관리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 한중관계 전문가들의 냉정한 진단이다.
중국의 차기 주한대사 임명은 연말까지 기다려야 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두 달에 한번씩 열리는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대사 인선을 결정하는 데, 10월에 보고를 올려도 12월에 결정이 되는 구조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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