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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 스님 영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책상을 마주한 자리에서 일하던 선배가 미간에 주름을 잔뜩 새기며 앓는 소리를 할 때 내가 서둘러 끼어들었다. "상원사에 가서 찍어와요. 나 그 동네 잘 아니깐 선배가 원하면 같이 가줄게."
내용인즉, 선배가 편집 진행하는 불교 관련 책에 한암 스님의 사진을 넣고 싶은데 정작 저자는 사진 찾는 일이야 편집자의 몫이라며 팔짱만 끼고 있다는 불평이었다. 그런 사진들은 포털사이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하겠지만, 뉴밀레니엄을 앞두고 인터넷 세상이 막 개화하던 1999년 늦가을의 이야기다. 편집주간이 자기 방에서 생글거리며 나오더니 내 어깨를 툭 쳤다. "당신, 지금 머리 복잡하구나? 두 사람 당장 내일이라도 시간을 내 봐. 내가 출장 처리 해놓을 테니까." 눈치 빠르고 품성까지 드넓은 상사를 둔 덕에 나와 선배는 다음 날로 출장을 빙자한 당일치기 오대산 여행을 떠났다. 새벽 기차를 타러 청량리로 출발하기 전, 부랴부랴 만든 유부초밥과 귤과 사과 몇 개 그리고 뜨거운 물에 맥심커피 가루 한 숟가락 퍼 넣은 보온병을 배낭에 챙겼다.
10월 말의 강원도는 이미 초겨울이었다. 진부역에서 버스로 갈아탄 후 그 시절 버스 종점이던 월정사 입구에서 내렸다. 거기서부터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산길은 봄에도 여름에도 좋았지만, 나무들이 절반 넘게 잎을 떨군 늦가을 풍경은 묘한 정취를 자아냈다. 이곳이 처음이라는 선배의 탄성은 산길 초입에서부터 시작돼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왜 진작 이런 절경을 공유하지 않았느냐.' 내게 지청구를 하며 걷던 그가 말수를 점차 줄이더니 동피골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우뚝 멈춰 눈을 부라렸다.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지?" 대답 대신 길가 계곡으로 슬며시 내려가 도시락과 보온병을 배낭에서 꺼냈다. 따뜻한 커피 물을 마신 그의 눈에서 독기가 풀리고, 입안으로 유부초밥을 밀어 넣는 얼굴에 오대산 문수보살 같은 미소가 피어났다.
그렇게 한 시간쯤 더 올라가 필름 카메라로 찍어온 한암 스님 영정은 빛이 반사돼 쓸모없게 돼버렸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상원사 행정담당 스님한테 얻어온 자료 속 사진으로 대체한 건 우리 둘만 아는 부끄러운 출장 기록이었다. 그래도 20세기 끄트머리 늦가을의 오대산을 걷다가 도시락을 까 먹던 행복만은 만방에 자랑해도 좋을 추억으로 남았으니… 요 몇 달, 사는 일이 버겁다고 토로하는 내 친구를 보며 25년 전 오대산 여행을 떠올린 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치부책 지워나가듯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는 상황이라 멀리 갈 수는 없었다. 유부초밥을 만들고 커피를 내렸다. 지난주 서귀포에서 사 온 귤과 여행용 컵, 경량 돗자리를 챙겨 인왕산 둘레길로 친구를 데려갔다. 30분쯤 걷다가 숲속 평평한 바위에 돗자리를 폈다. "와, 좋다. 살 거 같네." 돗자리에 앉은 친구가 기지개를 켜며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자, 이건 애피타이저고, 새콤달콤한 유부초밥에 따신 커피까지 잡숴 봐. 인생관이 그냥 싹~, 바뀔 테니까."
귤 하나를 까서 그의 입에 넣으며 나는 허풍을 떨어댔고,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던 친구가 끝내 위아래 치아를 드러내며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지난봄 이후 오랜만에 보는 박장대소였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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