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감귤, 매년 썩어서 버려져...작년도 처치곤란 1만톤, 제주도가 구매→폐기
박종명 제주양조장 대표, 와인으로 발효...시간 흐를수록 가치 높아져
맛은 화이트와인과 매우 비슷해...한국와인대상서 '청동상'
박종명 주식회사 제주양조장 대표./사진=김성진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알고 마시지 않으면 비전문가는 포도가 아니라 감귤로 만든 와인이란 걸 모를 거란 말은 진실이었다. 주식회사 제주양조장의 '1950 감귤와인'은 와인에 조예가 깊지 않다면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와인과 구분하기 매우 어려운 음료였다. 눈으로 보기에 화이트 와인보다 색이 진하지만 와인잔에 담아 스월링(잔을 바닥에 대고 빙빙 돌려 풍미를 키우는 것)을 하면 냄새가 영락없는 화이트 와인이었다. 한 모금 머금으니 맛도 비슷했다. 바디감은 화이트와인보다 묵직했다. 감귤와인은 한국와인대상에서 포도로 만든 국산 와인 50여 품종과 경쟁해 청동상을 받았다. 소믈리에들이 평가한 결과였다.
주식회사 제주양조장은 제주도 중심부 한라산 동쪽의 조천읍에 있다. 양조장을 찾은 지난 9일 제주는 한라산 자락에 폭우로 형성된 안개가 양조장을 포근하게 덮고 있었다. 왕복 4차선 도로를 벗어나 5분쯤 더 달려 자그마한 교회를 하나 지나면 보이는 팔각정 모양의 건물 하나가 제주양조장이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술 익는 시큼하지만 불쾌하지는 않은 냄새가 확 났다.
20평남짓으로 넓지는 않았다. 정면에 높이가 3m쯤 되는 은빛 통 세개가 보였다. 통 안에서 감귤은 술로 익어갔다. 매년 감귤 4만톤을 가져다 750ml짜리 와인 약 4만5000병을 만든다고 한다. 단순히 귤의 껍질을 벗기고 통안에 넣는다고 와인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귤은 과육의 표면에 오일 성분이 있어 각별한 조처를 하지 않으면 발효가 잘 되지 않는다. 제주양조장은 농촌진흥청 감귤연구소의 기술을 이전받아 오일을 제거해 2010년부터 감귤와인을 제조했다.
이전에도 제주에서 만드는 감귤 담금주는 있었지만, 감귤을 발효한 것이 아니라 주정에 감귤 액기스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감귤와인보다 과일소주에 가까운 음료였다. 1950 감귤와인은 2010년 G20, 2011년 한일정상회담에 만찬주로 올랐다. 맛이 화이트 와인과 비슷하기 때문에 해산물과 잘 어울린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제주양조장의 뒤를 이어 감귤와인을 만드는 회사는 두곳 더 늘어났다.
제주양조장의 박종명 대표(50)는 감귤와인이 앞으로 제주감귤을 '살릴 길'이라고 본다. 지난해에만 제주감귤이 1만톤 폐기됐다. 수요가 적고, 처리에 한계가 있어 제주도가 예산을 들여 1kg당 150원에 사들인 뒤, 폐기했다.
박 대표는 제주양조장을 설립하기 전 로펌에서 파산업무를 했다. 제주도의 한 회사가 파산한 뒤 매물로 나온 감귤밭에서 수확한 감귤이 전부 버려지는 것을 보고 '술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해 사업을 시작했다. 감귤을 그냥 두면 썩어서 버려야 하지만, 와인으로 발효시키면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가치가 커지게 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박 대표는 유일한 걸림돌이 '무슨 와인을 귤로 만드느냐'는 편견이라고 한다. 박 대표는 "현재로서는 정부나 제주도의 공식행사에서 건배주 정도로 쓰이지만 가격도 한병에 2만원대로 저렴하고 맛도 와인과 비슷하기 때문에, 편견을 버리고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매년 버려지는 감귤들이 아까워 양조 시설을 늘릴 계획이다. 제주대 식품산업과와 청귤로 제조하는 스파클링 와인도 시범 생산한다. 다만 제주도의 지원을 받아 올해 새 양조장을 착공하려 했지만 관련 예산이 삭감돼 계획은 무기한 연기됐다.
박 대표는 본래 로펌에서 파산 업무를 하던 경력을 살려 제주대 행정학과의 겸임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스스로를 "월화수는 행정학과 교수, 목금토일은 술을 빚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앞으로 목표는 제주도의 세부 지역별 감귤로 더 다양한 감귤와인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기온 상승으로 해남, 완도 등 내륙에서도 감귤을 생산해 제주 감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와인 등 고부가 제품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김성진 기자 zk007@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