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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대통령님, 대체 뭣이 중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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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서민의 정치 구충제]

이대로 가면 여권 공멸… 尹에 가장 큰 책임

조선일보

일러스트=유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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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에서 (사시) 2차 시험을 봤는데, 동국대 올라가는 길에 족발집이 쫙 있잖아요. 시험 끝나면 합격한 친구들이 격려차 온단 말이에요. 친구들이 어딜 가면 되냐 그래서 학교까지 올라오지 말고 족발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대선을 6개월 앞둔 2021년 9월, 유튜브로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주자 면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1986년 사법시험을 보던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시험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흘간 치러졌는데, 금요일 마지막 과목은 형사소송법, “일필휘지로 쓰고, 시간을 보니 20분이 남았어요.” 당시 사시의 합격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가 과락, 그러니까 40점 미만인 과목이 없어야 하고 둘째, 평균 점수가 높아야 한다.

1986년엔 300명을 뽑았으니, 그 안에 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객관식으로 출제되는 1차와 달리 2차는 주관식, 다들 알다시피 주관식 시험은 되도록 많이 쓰는 게 좋다. 더구나 1986년이면 윤통이 법대 졸업 후 3년이 지났을 때, 사시생들이 ‘이번에 떨어지면 영영 못 붙는 거 아닌가?’라며 불안감을 느낄 시점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남은 20분 동안 필사적으로 답안을 작성하는 게 필요하지만, 윤통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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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예능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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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더 쓸까 하다가 ‘친구들도 기다리는데 빨리 가서 족발에 소주 한잔 해야지’ 하고 나왔다. 친구들이 ‘2차 시험은 마지막 시험지를 빼앗을 때까지 쓰는 건데, 미쳤다’고 하기에 ‘쓸 거 다 썼어’ 하고 갔다.” 윤통이 합격했다면 이것도 소소한 추억으로 남았겠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다른 과목은 다 합격점에 올라갔지만, 20분 먼저 나가버린 형사소송법이 39.66점에 그친 것이다. 결국 윤통은 사시에 합격하기까지 5년의 시간을 더 보내야 했다.

이 에피소드를 윤통은 SBS ‘집사부일체’에 나갔을 때도 언급했다. 자신의 흑역사라 불릴 만한 얘기를 방송에서 스스럼없이 하는 건 왜일까? 좀 늦었지만 결국 사시에 합격했고, 검찰의 최고봉인 총장까지 됐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될 듯싶다. 1963년부터 2017년까지 사시에 합격한 이는 2만명에 달하지만, 검찰총장을 한 이는 그때까지 44명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윤통이 저 에피소드를 별반 부끄럽지 않게,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리라.

그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상남자’다. 포털에 의하면 ‘빛나는 가치에 목숨 걸 줄 아는 남자’를 상남자라고 하는데, 그 빛나는 가치 중 으뜸이 ‘의리’. 사법시험이라는 치열한 무대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친구들을 떠올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은가? 위 영상에 ‘훈훈하다’ ‘친근감이 느껴진다’ 같은 댓글이 달린 건 당연지사, 내친김에 윤통은 1991년의 에피소드도 언급한다.

사시를 사흘 남긴 토요일, 대구에 사는 친구가 함이 들어간다고 윤통을 불렀다. 처음에는 거절하고 공부하려 했지만, 결국 강남고속터미널에 간다. “내가 친구들 함 이런 걸 빠져본 적이 없는데, 그냥 고속버스 안에서 공부하면 되지.” 버스 안에서 본 내용이 시험에 나와 합격까지 했으니 이번만큼은 해피엔딩이었지만, 사시 9수생이 시험 사흘 전 친구 함 들어오는 데 가는 건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일 아닌가? 사실 윤통이 검찰총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인간다운 매력이 있어서였다. ‘상명하복’을 근간으로 삼는 검사 세계에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 상관들과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지만, 사람 잘 챙기는 윤통의 능력은 훌륭한 검사들로 하여금 그를 따르도록 만들었으리라. 이른바 윤석열 사단. 더 감동적인 점은 그들이 정권의 부당한 압력으로 부산과 제주, 연수원 등으로 좌천됐을 당시, 총장이던 윤통이 권력에 맞서 같이 싸워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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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020년 1월 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뒤로 강남일 대검차장, 한동훈 반부패부장, 이원석 기획조정부장 등이 따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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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것 같던 의리는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전 국민을 살펴야 하는 자리, 그렇다면 의리보다는 권모술수가 더 필요한 덕목이어야 하지만, 윤통은 여전히 의리를 내려놓지 못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지난 총선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발탁한 김경율이 수면 아래 있던 김건희 리스크를 점화한 것이다. ‘상남자’ 신봉자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윤통이 총선 이후 단행한 검찰 고위급 인사를 야권이 ‘김건희 방탄’이라 비판했을 때,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 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냐? 이건 방탄이 아니라 최소한 상남자의 도리다.”

그러니까 한 대표의 행위는 상남자인 윤통에게 ‘배신’이었던 셈.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것은 그 직후였다. 20년 넘게 쌓아올린 둘의 우정은 거기서 끝났다.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 대표가 윤통에게 머리를 숙였지만,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윤통이 평소 ‘의리’를 중시했던 만큼, 배신에 대한 분노도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참패를 당했지만, 갈등은 계속됐다. 결과는 안 좋았을지언정 총선에서 최선을 다한 한동훈에게 위로의 말을 하는 대신, 윤통이 만난 이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입만 열면 대통령 탄핵을 부르짖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였다.

그 뒤 전당대회가 있었다. 국힘으로선 침체된 분위기를 끌어올릴 좋은 기회였지만, 평소답지 않게 저속한 공격으로 일관한 원희룡 등으로 인해 전당대회는 진흙탕 싸움이 됐다. 한동훈이 63%가 넘는 득표율로 당대표가 됐지만, 대통령은 그와의 만남을 피했고, 어쩌다 만날 때도 꼭 여럿이 함께였다. 참다못한 한 대표가 독대 요청을 언론에 흘리자, 대통령실은 불편함을 호소한 끝에 결국 독대를 거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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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 뒤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 대통령실 참모진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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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대통령실에 근무하던 김대남 의혹이 터졌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대남은 김 여사 스토커인 서울의 소리 이명수에게 “너희가 이번에 잘 기획해서 (한동훈을) 치면 김 여사가 좋아할 것”이라며 한 대표 공격을 사주했다. 그랬던 이가 처벌은커녕 그 뒤 연봉 3억원에 달하는 금융기관 감사로 영전한 건 분명 수상쩍지만, 더 이상한 건 한 대표가 감찰을 지시했을 때 친윤들이 ‘해당 행위’라며 한 대표를 비난했다는 사실이다.

대체 여권 내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확실한 것은 이대로 계속 가면 여권은 공멸할 수밖에 없으며, 김건희 여사도 지키지 못할 수 있다. 그때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이는 윤 대통령이라는 점, 그래서 대통령님께 호소해 본다. 대통령님, 대체 뭣이 중합니까?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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