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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그리니치 표준시 사라질지도…시간도 국력 [조홍석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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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파리, 로마와 더불어 유럽 여행의 중심 도시로 손꼽히는데요. 과학에 관심 많은 여행객이라면 시간을 내 런던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그리니치 천문대를 찾아가곤 합니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지구를 동쪽, 서쪽으로 분할하는 경도 기준점인데요. 부지 내 그려진 본초자오선(本初子午線) 경계선 위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자 기꺼이 비싼 임장료와 긴 대기시간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본초자오선이 뭔지 생소한 분들이 계실 텐데요. 약간의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위도와 경도 2가지 지표가 필요합니다. 그중 위도는 북극성 고도를 측정하면 알 수 있지만 동서를 나누는 경도 기준점은 인위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1884년, 25개 국가가 모여 경도의 기준점을 어디로 할지 회의를 열었는데요. 영국은 런던을, 프랑스는 파리를, 미국은 워싱턴 D.C를 기준점으로 삼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투표 결과 22표를 얻은 영국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이 같은 결론은 이미 예상된 수순이기는 했습니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힘센 나라는 영국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세계 표준시는 그리니치

표준시(GMT)로 정해졌습니다. 15도 간격으로 1시간씩 시간이 차이 나도록 정함에 따라 우리나라 서울은 동경 127도임에도 135도를 기준으로 시간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반도 상공에서 해가 하늘 정중앙에 오는 시각은 낮 12시가 아니라 12시 30분 전후가 되니 우리는 실제 시각보다 30분씩 일찍 활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은 그리니치 천문대 앞쪽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지만 원래 그 자리에는 영국 왕실이 살던 그리니치 궁전이 있었습니다.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등이 이 궁전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이 그 공간에서 펼쳐졌던 셈입니다. 그럼 천문대는 언제 생겼을까요. 대영제국으로 번성하기 시작하던 1675년, 찰스 2세의 명령으로 세인트폴 대성당을 설계한 크리스토퍼 렌이 그리니치 궁전 뒤 언덕에 왕립 천문대를 만듭니다.

왜 왕궁 바로 옆에 천문대를 만들었을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간을 정하고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하늘이 내리신 권력자의 권위와 능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해외 식민지를 확장하던 영국으로선 정확한 시간 계산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결국 막강한 국가 파워로 전 세계 표준시로 인정받은 겁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합니다. 신라가 경주 왕궁 인근에 첨성대를 세웠고 조선에서도 경복궁 궐내와 창덕궁 인근 등 두 곳의 관상감 관청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막상 그리니치 본초자오선 위에 서서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를 켜보면 서경 0도 00분 05.4초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실제 경도 0도 0분 0초 지점은 이 선보다 동쪽으로 102.5m 떨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그 비밀은 GPS 시스템을 운영하는 미국에서 오차를 보정했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달의 중력 간섭으로 자전 시간 오차가 미세하게 발생하는데 미국에서 36대의 GPS 위성을 띄워 측정한 결과, 세월에 따른 위치 오차가 발생한 것이 확인돼 1984년 그리니치 자오선에 대한 새로운 위치값을 정한 것이죠.

이미 과학계는 시간 오차를 없애기 위해 전 세계 48개국 400여 천문대에서 세슘 원자의 진동을 이용해 측정한 협정세계시(UTC)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은 새로운 국제표준시(TAI)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기에 조만간 그리니치 표준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매경이코노미

[조홍석 삼성서울병원 커뮤니케이션수석]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0호 (2024.10.16~2024.10.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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