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뜨거운 국제뉴스 중 하나인 이스라엘의 중동 전쟁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난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연쇄적인 중동 공격을 옹호한다. 상대국 국민의 엄청난 희생과 물질적 피해를 야기한 러시아와 이스라엘을 서방이 달리 취급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중동 국가들도 하마스 전쟁 초기부터 이스라엘의 과도한 공격에 미국이 눈감고 있다며 ‘이중 잣대’ 문제를 제기해왔다. 지금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넘어 전장을 확대하는데도 막아설 기미가 없으니 반전 시위는 늘어난다. 두 전쟁이 비슷한 시기에 벌어지고 있어 국제정치의 이중 잣대 현상을 파악하는데 이만한 사례도 없다.
이스라엘 메르카바 탱크가 레바논과의 국경 근처에 위치해 있는 모습.[사진=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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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들은 1년 넘은 전쟁의 발단이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분파 하마스의 인질 납치라며 자신들은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마스의 깜짝 공격을 초래한 것은 진작부터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잦은 무차별 공습이었다. 특히 이스라엘의 압도적 보복 규모를 감안하면 이스라엘은 결코 피해자가 아니다.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격으로 지난 1년 간 가자에서 민간인 사망자는 4만1909명으로 이중 3분의 1은 어린이다. 반면 이스라엘 국민은 1200여명 사망에 251명이 납치됐다. 유엔(UN) 추계로는 부서진 가자 건물 잔해는 최소 4200만t으로 학교·병원 등 사회기반시설이 포함된다. 양측의 피해 정도는 비교 불가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는 이스라엘 공격에 숨지기도 했다. 이젠 헤즈볼라(레바논)와 후티반군(예멘)을 넘어 이란까지 공격할 태세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자에 남은 자국인 인질 구출에만 집착하는 모습은 정책뿐만 아니라 인간성에서도 이중 잣대를 보여준다. 자국군이 레바논 수도까지 공격해 민간인 희생을 키우는 와중에 이스라엘인들이 인질 석방을 요구하며 흘리는 눈물을 제3자가 크게 공감하긴 힘들다. 이스라엘인들이 인질 납치로 국제사회에서 받았던 공감의 총량은 빠르게 줄고 있는 듯하다.
서방 각국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어느 때보다 많아진 것도 이스라엘 감싸기 정책에 대한 반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지난 1년간 반유대주의 사건은 1만 건을 넘어 역대 최다였고, 각국에서는 이스라엘의 전쟁 확대를 비판하는 시위가 계속중이다. 그런데도 미국과 유럽 정상들은 하마스 전쟁 1년을 맞아 이스라엘의 피해를 부각하고 유대인 공동체와의 연대만을 강조한다. 지난 7일 파리시가 에펠탑 소등 행사를 가졌는데 중동 인민이 아닌 이스라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남부 외곽을 드론으로 공습해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인 푸아드 슈크르를 제거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이날 공습 현장 근처에 파괴된 차량 옆을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불과 몇시간 뒤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이란 수도 테헤란을 찾은 하마스 정치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 정치국장도 표적공습해 사살했다. 가자전쟁 휴전협상을 주도하던 하니예의 죽음과 베이루트 보복공습으로 확전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사진=신화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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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랍계 국제정치학자는 이스라엘 광기어린 전쟁 행태를 비난할 때 ‘아픈짐승 신드롬(Wounded Beast Syndrome)’이라는 표현을 쓴다. WBS는 아픈 동물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주변을 해치는 모습을 상정한다. 그는 계속된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더욱 흉포해지고 잔혹해질 것으로 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해 9월 하마스 공습이 있기 2주 전 유엔(UN) 뉴욕본부 연설에서 ‘대(大)이스라엘주의’를 외쳤다. 가자와 서안 지구를 이스라엘에 편입시켜 팔레스타인을 지도에서 지우겠다는 것이다. 네타냐후가 이란까지 공격할 품새를 봐서는 하마스 납치극을 빌미로 대이스라엘주의 실현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을지 모른다.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망가진 러시아처럼 국가 이미지 추락을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 그들의 포탄에 맞은 사상자가 늘수록 그에 비례해 반이스라엘 정서는 중동을 넘어 세계로 확산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침없는 행보와 서방의 이중 잣대를 감안하면 이스라엘에 맞선 중동 각국의 생존 투쟁을 ‘테러리즘’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 멈출지 모를 이스라엘의 맹폭 앞에 그들이 점점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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