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1 (금)

[책&생각] 한-캐나다 문학 모았더니 ‘미래는 기다림 아닌 기억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캐나다와 한국 작가 8명이 울력한 앤솔로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해’가 출간됐다. ‘다양성 그리고 포용과 연대’를 주제로 한 기획물이다. 작가들은 11~13일 열리는 제20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대담으로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윤고은·김멜라·김애란·정보라·조던 스콧·리사 버드윌슨·얀 마텔·킴 투이 작가. 민음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해
김멜라·리사 버드윌슨·김애란·얀 마텔·윤고은·조던 스콧·정보라·킴 투이 지음, 홍한별·윤진 옮김 l 민음사 l 1만7000원



캐나다와 한국 작가 여덟 명이 울력한 앤솔로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해’가 출간됐다. 한국과 캐나다 수교 60돌(2023년)을 기념한 기획물(와우컬처랩)로, 작가들은 지난해부터 구상 집필했다. 흔치 않은 형식인데다 책 한 권에 직조된 세계가 넓다. 전 세계 1200만부가 팔린 소설 ‘파이 이야기’의 얀 마텔을 위시로 하여, 리사 버드윌슨·조던 스콧·킴 투이와 한국의 김멜라·김애란·윤고은·정보라 작가가 천연색으로 두 사회를 횡단하고 연결한다.



가령 캐나다의 원주민·이민자 통합 갈등은 한국의 미래일 터, 어떤 한국은 캐나다의 어떤 미래가 된다. 지역·국가 단위 국경은 에이아이(AI)가 새로 그을지도 모른다. 사랑, 이별의 미래, 언어의 미래는? 앤솔로지에서 경험하게 되는 세계다.



수록작 ‘판사님’은 베트남 보트피플로 1979년 캐나다에 정착, 자국 내 최고 권위의 ‘총독문학상’까지 받은 작가 킴 투이(56)의 자서전 같은 소설이다. 1975년 패망한 남베트남의 호치민(당시 사이공)서 살던 3년은, 결혼식 날 너무 기뻐해도 장례식 날 너무 슬퍼해도 “반애국”이던 시국. 10살까지 ‘거짓’으로 버텼다. 10m짜리 배에 218명이 실려 도착한 데가 말레이시아 난민 수용소다. 당시 화자를 지배한 생각은 “아무것도 느끼지 말 것. 그 무엇도 마음에 담지 말 것”이다. 그러지 않았던들 몇 달간 2천명 난민의 똥오줌 구덩이 옆에서 “숨 한 번 쉴 때마다 세상의 모든 추악함을 다 들이마셨을 것”이고, “갈증이 인간성을” “배고픔이 존엄성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보게 되었을 것이다.”



작가가 되어 캐나다 사절단으로 말레이시아에 간 화자가 현지 대법원장과 나눈 대화가 알짬이다. 첫 방문이냐는 간단한 질문은 간단히 답변될 수 없다. ‘사절단에서의 역할’을 물었을 땐? 8명 사절단 가운데 가장 단신의, 유일한 여성이 프랑스어를 쓰는데 피부색은 도무지 달라 보이지 않아 아득했을 그 남성 법관에게? 답변은 외려 간단했다. 캐나다 국외 공식 사절단 관련 기준이 그래서다. 여성·예술계·소수집단·불리한 조건·프랑스어권(캐나다는 영어·프랑스어 공용)의 인물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화자는 “캐나다는 저를 선정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했다”고, 아녔다면 호텔방 5개, 식사 5인분이 더 필요했을 거라고, 그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반농반진한다.



킴 투이가 경험적·단선적으로 전통의 경계를 사유했다면, 윤고은은 단편 ‘테니스나무’에서 선험적·정념적으로 미래의 경계를 형상화한다. 이번 앤솔로지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다. 윤고은표 명랑한 상상과 입담을 근력 삼아 부조리한 현실 세계로부터 “담벼락이 없는 공동지대”까지 감각시킨다. 단편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여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생존배낭 제조사 전략팀의 40대 사원인 ‘나’는 2년 전 마라톤 완주를 앞둔 지점에서 역주행한 적 있다. 40㎞ 급수대 앞 자신을 닮은 이를 본 뒤 “나인 양 느껴져 소름”의 “찰나가 점점 부풀”었으니, 1㎞나 더 뛰다 결국 방향을 틀었다. 참을 수 없는, 주체에 대한 호기심이요, 홀림이다.



‘나’의 회사도 대내외 업무에 AI를 가세시킨다. 평판 좋은 동료가 알고 보니 AI였다거나 ‘나’가 AI로 오해받는 지경에 이른다. AI가 ‘경계’를 지움으로써 인간성의 위기가 노정된 셈이다. ‘나’는 오해와 위기를 감수하고자 한다. AI팀의 인간 관리자를 확인하고 싶어서, 하나의 결과물이 던져지기까지 일었을 수많은 ‘찰나’의 소요와 정동을 확인하고 간직하고 싶어서.



단편 속 AI는 ‘우리’의 이름으로 주체성과 개별성마저 잠식해 버린다. 과정에서의 지난 모든 ‘순간’의 ‘존재’를 형해화한다. 말하자면 ‘AI 파시즘’이랄까. 킴 투이가 인간이고자 스스로 강박했던 “아무것도 느끼지 말 것. 그 무엇도 마음에 담지 말 것”을, AI가 인간 상대로 전유하는 앞날을 상상케 한다. ‘테니스나무’에선 이중적 의미로의 ‘꿈’을 대안 삼는다. 그 모든 찰나가 꿈에 간직되고, 나의 그 찰나를 다른 사람이 꿈꾸며 발견하기도 한다. 역주행 따위는 성립되지 않는, 이른바 “담벼락이 없는 공동지대”다. 꿈을 꾸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에 대한 믿음일 텐데, “꿈은 삶이 되었고, 삶은 현실이 되었다”는 킴 투이의 말과 이다지도 동닿는다. 생존배낭은커녕 “바다로 던져지는 유리병”처럼 모든 걸 잃고 고국을 떠난 자 아니던가.



여운으로 치자면 얀 마텔(61)의 ‘머리 위의 달’이 으뜸이다. 캐나다 스키장 리조트의 화장실 변기 밑 정화조에 두 번이나 빠져 하룻밤 뒤 구조된 소말리아 이민자에게 경위를 묻는 작가(아마도 자신)가 화자다. “사고였”을 뿐이라며 시종 무덤덤하던 이민자 남자가 형식상 가족 안부를 전하는 작가의 마지막 질문에 불같이 화를 내며, 서사도 삽시에 달아오른다. 사고와 사고 아닌 것이 구별되고, 차라리 지하 오물 속에서 바라본 세계조차 그리움이 되는 사연이 비극적으로 드러나면서다. 엽편소설에 ‘파이 이야기’만큼이나 길고 길었을 이야기를 눌러담은 얀 마텔의 방식이다.



‘보라색 뗏목’은 말더듬이 시인 조던 스콧(46)의 절절한 장시(長詩)다. 과거와 달리 12살 되면서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아들을 보며 자신에 대한 원망, 아들과의 미래에 대한 열망을 집요하게 서정한다. “내 성대에 박힌 단어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편지를 써/…/ 그리고 다시 흙 음절 땅 사람 모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고 싶어.” 시인의 후기대로 “내 발성 기관을 찢고 (…) 언어의 허물을 벗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언어로 직시하고 언어로 승화하고자 하니, 아들과의 모든 추억을 상징하는 시제 뗏목은, 윤고은의 찰나, 킴 투이의 보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의 미래는 김멜라, 이별의 미래는 리사 버드윌슨의 수려한 작품으로 가늠된다. 김애란, 정보라의 단편까지 더해져 앤솔로지 안에선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경계와 경계가 교차하고, 마침내 과거와 미래가 절묘히 교차하고 있으니, 제목마따나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다.



작품집을 기획한 사단법인 와우컬처랩(이현진 대표)이 주최해온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11~13일 서울 마포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마음폴짝홀에서 열린다. 공연, 그림전, 심포지엄, 강연 등 다채롭다. 앤솔로지 참여 작가들도 대담으로 직접 만나볼 수 있다. 북페어(비즈니스)가 아닌 북페스티벌(놀이·문화) 형식을 국내 최초 소개한 지 올해로 딱 20년째. 지역 대표 행사로 홍보해왔던 서울 마포구(박강수 구청장)는 지난해부터 지원을 사실상 끊었으나, ‘축제’는 계속 되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