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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270세대 아파트에 2집만 산다…부산 '소멸위험 1위' 이곳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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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부산 영도구 청학2동 일대 모습. 미로처럼 생긴 골목길 곳곳이 빈집이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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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4일 오전 11시 부산시 영도구 청학2동. 미로 같은 골목길을 50여 미터 올라갔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낮인데도 골목길은 을씨년스러웠다. 곳곳에 있는 폐가와 녹슨 철 대문, 더럽혀진 길바닥과 담벼락이 이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폐가 안은 부서진 가전 도구 등 각종 쓰레기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폐가 사이 텃밭이 없었다면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좀 더 가다 보니 80대로 보이는 노인이 현관 앞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대문을 두드리며 말을 걸었으나 “(귀가) 안 들려”라며 손사래를 쳤다. 30여 분간 동네를 돌아다니다 처음 만난 이군우(74)씨는 “젊은이들이 다 떠나고 여기는 노인만 산다”고 말했다. 우영팔(79)씨는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떠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만 남았다”며 “겉이 멀쩡한 집도 집주인이 죽거나 자식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해 빈집으로 남은 게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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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청학2동 골목길 모습. 노인들이 대부분인 이동네에 이런 가파른 길이 많아 낙상사고 주의 안내판이 붙어 있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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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청학2동의 한 빈집 내부 모습. 각종 쓰레기로 발 디딜틈이 없다. 이렇게 방치된 빈집 사이에 사람이 사는 집이 섞여 있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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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고령화 여파는 ‘대한민국 넘버2’ 도시인 부산까지 덮쳤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급기야 소멸위기 도시로 분류됐다. 부산 인구는 1995년 388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하락세를 보였고, 2023년 329만명으로 330만명 선이 무너졌다.

부산의 합계 출산율은 1998년 1.3명 이하로 떨어진 이후 2023년 0.66명으로 서울(0.55명)에 이어 최저 수준이다. 고령인구는 2023년 22.6%로 특별·광역시 중 최고 수준이다. 청년인구도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수도권으로 이전한 부산 청년 인구는 전체 순유출의 54%인 10만1000명으로 나타났다.

부산 자치구 중 소멸위험도가 가장 높은 곳은 영도구다. 영도는 대한민국 조선 산업 발상지이자 1960~70년대 초반까지 대표적 조선산업 기지였다. 대형조선소와 수리조선소 등 각종 공장이 해안가를 따라 들어섰다. 이를 중심으로 배후 지역에 상업시설과 주거지 등도 조성됐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젊은 층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사실상 ‘노인과 빈집’만 가득한 쇠락한 도시로 전락한 것이다. 1978년 21만 4000여명이었던 인구는 10월 현재 10만 4661명까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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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흰여울마을 일대 모습. 오른쪽 흰여울마을 쪽은 관광객들이 북적이지만 도로 반대편 영선2동쪽 인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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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구 등은 자구책으로 부산의 산토리니 마을로 불리는 영선2동 흰여울마을을 비롯해 봉래동·대평동·동삼동 등에 커피 거리 조성 등 도시재생을 시도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관광산업으로 쇠퇴해 가는 옛 도시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이런 시도는 연간 100만명 이상이 흰여울마을과봉래동 커피거리 등을 찾는 성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인구감소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실제 지난 2일 오후 1시에 찾은 흰여울마을 일대는 평일인데도 국내외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 길 위에 이국적인 풍경을 가지고 있는 이 마을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골목길과 카페 등은 북적였다.

하지만 흰여울 마을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영선2동은 걷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요했다. 길가에 있는 가게는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거나 문이 닫혀 있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낡은 간판만이 이곳이 낚시점·시계수리점·식육점 등을 했던 가게라는 것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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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만 붙은 채 문을 닫은 영선 2동 가게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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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세대 중 2~3세대만 남은 영선아파트 모습.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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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하는 김모(48·여)씨는 “원래 같은 가게 2곳이 있었는데 한 곳은 장사가 안돼 문을 닫고 우리만 남았다”고 말했다. 50년째 미용실을 하는 홍모(73·여)씨는 “곰팡이 필까 싶어서 가게 문 연 거지, 손님은 아예 없다”며 “밤이 되면 관광객도 다 사라져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아파트 246가구 가운데 절반이 빈집

이곳에서 위쪽으로 20여m 떨어진 영선아파트는 1969년 270세대 규모로 지었지만, 현재 2~3채만 남고 모두 빈집이다. 아파트 외벽 발코니 바닥은 콘크리트가 절반이 부서진 채 허공에 매달려 있어 곧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바로 옆 영선 미니 아파트(1977년 준공)도 246세대 가운데 절반 정도가 빈집이다. 유영애(67·여) 영선2동 10통장은 “예전에는 집 근처에 병원과 약국도 있고, 조그마한 재래시장도 있었는데 지금은 인구가 줄면서 다 사라져 차를 타고 도심지까지 나가야 한다”며 “흰여울 마을이 조성돼 낮에는 그래도 사람이 있지만, 원주민에게는 소음과 쓰레기만 주지 큰 도움이 되지 않고 밤엔 더 적막하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로 영도구 청학·봉래·남항시장 등 상설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날 오후 4시에 찾아간 청학시장은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고, 가게 주인만 멍하니 밖을 쳐다보거나 TV를 보고 있었다. 101개 점포 중 41곳이 문을 닫아 이곳이 상설시장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튀김 가게를 운영하는 정광순(77·여)씨는 “손님이 없으니 2~3년 전부터 하나둘 문을 닫고 나간 뒤에 아무도 안 들어와 저리 비어있다”며 “주말·평일 할 것 없이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고 마수도 못할 때도 잦다”고 말했다. 건어물 가게 주인 김모(67)씨는 “수십만 원 월세 내기도 힘든 실정이어서 나도 내년 설까지만 하고 그만둘까 생각 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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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청학시장 내부 모습. 입구에서 중간 위쪽으로 이처럼 문닫은 점포가 즐비하다. 101개 점포 중 41개가 비어 있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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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봉래시장 모습. 청학시장보다 빈 점포의 수는 적지만 이곳도 손님이 줄어들기는 마찬가지. 영도의 3대 시장 중 남항시장만이 그나마 재래시장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영도구 측 설명이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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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역 상당수 자치구·군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6월 내놓은 ‘2024년 3월 기준 소멸위험 지역 현황과 특징’에 따르면 부산에서는 북구(0.481)·사상(0.483)·해운대(0.491)·동래(0.499) 등 4개 구·군이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앞서 진입한 영도(0.256)·서구(0.380)·동구(0.397)·중구(0.397)·금정(0.417)· 사하(0.431)·남구(0.473)까지 포함하면 부산 16개 구·군 중 11곳이 소멸위험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멸위험지수가 0.2∼0.5면 소멸위험, 0.2 미만은 소멸 고위험지역으로 분류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영도구 현재 모습이 부산의 미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위원은 “저출생과 고령화, 수도권 인구 유출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는 중앙정부가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획기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며 “이런 큰 밑그림 속에서 자치단체가 산업·교육·주거·복지·문화를 연계하는 전략을 내놓지 않으면 생색내기나 구색맞추기로 전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부산=위성욱·김민주 기자 we.sung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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