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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손해용의 시선] 65세 정년연장, 그 전에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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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손해용 경제부장


만 60세에 멈춰있는 법률상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이 정치권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으로 60세 이상의 노동 참여 필요성은 커졌다. 여기에 국민연금 수령 나이가 65세로 또 연장되면서, 이에 맞춰 고용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지고 있어서다. 일본·독일 등 한국보다 빨리 늙은 주요 국가는 정년을 65세 이상으로 늦췄다. 한국에서도 정년연장은 이제 시기의 문제일 뿐,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본격적인 추진에 앞서 귀담아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근로자를 채용하는 주체인 기업의 목소리다.



‘연공서열 임금제’ 개편 없이는

대기업 중장년 정규직만 혜택

현대차 재고용 제도 참고할 만

사실 조선·철강·자동차 등 제조업 현장에선 장년층 인력에 대한 수요가 크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고숙련 블루칼라’가 부족해져서다. 비록 60세는 넘었다지만, 아직도 팔팔한 고령 숙련공들은 아직도 현장에서 대우받는다. 이들 역시 퇴직 이후에도 일할 의지가 강하다. 겉보기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의 얘기. “50대가 은퇴하면 신입 직원 2~3명을 채용할 자금 여력이 생긴다. 기업 입장에선 아무리 우수한 시니어 숙련공이라도 은퇴를 마다할 리 없다. 대안 없이 정년만 연장되면 기업 인건비 부담은 급증할 수밖에 없다.” 다른 중견기업 부사장의 얘기도 비슷하다. “크게 보면 일반 사무직 중심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하는 기업이 훨씬 더 많다. 장년층 인력 수요는 산업·업종별로 다르고, 한 직장 내에서도 직군에 따라 정년연장에 대한 의견이 천차만별이다.”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 직종을 고려하지 않은 근로시간 제도 등을 고치지 않은 상황에서 일률적 정년연장은 기업의 경쟁력 쇠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년연장이 청년 실업 문제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60세 정년 의무화가 청년 및 장년 고용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부터 60세 정년이 법적으로 의무화된 이후 청년 고용이 16.6%나 줄었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년연장의 청년층 일자리 효과’ 논문에서 “매년 1만~1만2000개의 청년층 일자리가 잠식될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했다. 여기에 청년의 일자리 진입이 더 어려워지면 세대 간 임금 격차는 지금보다 더 심해질 수 있다.

혜택이 대기업 정규직에 집중된다는 우려도 새겨들어야 한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2022년)에 따르면 직원 300명 이상 기업의 94.3%가 정년제를 도입했지만, 300명 미만 기업은 21.9%에 불과하다. 이미 심각한 구인난에 신음하는 중소기업 중에서는 정년을 아예 폐지한 곳이 많다. “근로자의 85%는 중소·영세기업에 있다. 대기업 정규직은 전체 일자리의 15%, 이 가운데 정규직이면서 노조가 있는 대기업 일자리는 7% 남짓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을 연장하게 되면 그 수혜가 고령층 내에서도 소수에 돌아간다.”(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

한국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5년에 걸쳐 ‘65세 고용’을 정착시켰다. 2000년 관련법을 개정해 기업이 65세까지 고용을 유지하도록 ‘유도’했다. 2013년부터는 3년마다 한 살씩 정년을 늘리면서, 2025년까지 정년연장을 희망하는 근로자를 65세까지 고용할 ‘의무’를 부여했다. 한국도 긴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에선 우선 경직된 호봉제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를 그대로 두고 정년을 늘렸다간 기업은 고임금을 받는 장년층을 조기에 퇴직시키려 할 것이고, 청년층은 계속 낮은 임금을 받게 돼 불만을 키우게 된다. 또 고용 연장 방식을 정년연장뿐만 아니라 퇴직 후 재고용, 정년 폐지 등으로 다양화해야 한다. 개별 기업 상황에 따라 장년층이 자연스럽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최근 도입한 ‘숙련 재고용 제도’가 참고할 대안이 될 수 있다. 60세 정년 이후에도 본인이 원하면 ‘신입 초봉’을 받고 2년을 더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회사는 숙련 근로자를 적은 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어 좋고, 근로자는 퇴직 후 소득 절벽을 막을 수 있어 ‘윈윈’이다.

한국은 은퇴연령 이전인 50대 남성의 조기퇴직과 30대 후반 여성의 경력 단절 등이 심각하다. 정년 이전에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구조가 생겨난 상황에서 은퇴 연령만 고치는 것은 효과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사전 준비 없이 덜컥 정년을 늘렸다간 혜택을 받게 될 사람들은 강한 노조가 있는 대기업 중장년 직원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정년연장 방안은 이런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손해용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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