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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팔순 넘은, 엄마의 엄마도 묻는다…‘아직 동성 결혼이 안 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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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지아(오른쪽)씨의 어머니 신영순(가운데)씨와 박씨의 배우자 손문숙(왼쪽)씨가 신씨가 적은 편지를 읽으며 울먹이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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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남편이 내년에 벌써 환갑이거든요. 그래서 동성혼 법제화는 저희에겐 5년 뒤, 10년 뒤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이뤄져야 하는 시급한 일이에요.”



영화감독 김조광수씨의 배우자 김승환씨(영화사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의 말에,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던 참가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혼인평등연대가 함께 꾸린 캠페인 조직 ‘모두의결혼’ 등의 주최로 서울 영등포구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10일 오전에 열린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혼인평등소송 시작 기자회견’에서의 일이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2013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내 첫 공개 동성 결혼식’을 열어 주목받았다. 결혼식 이듬해인 2014년 또다시 국내 최초로 혼인신고 불수리에 불복하는 소를 제기한 ‘소송 선배 부부’로서 이 자리에 ‘지지 발언자’로 참여했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소송 제기로부터 10년 뒤, 이성부부와 같은 ‘결혼할 권리’를 요구하며 혼인평등 집단소송에 나선 부부는 총 11쌍 22명. 그중 16명이 기자회견에는 참여했다. 이들의 가족과 지지자, 법률대리인단 등이 함께한 기자회견 현장은 웃음과 울음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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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부부 11쌍이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소송을 제기하기에 하루 앞서 1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 최초 혼인평등소송 원고인 김조광수(왼쪽)·김승환 부부가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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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감독은 이 자리에서 “11년 전 결혼식을 올리면서 남편에게 ‘10년만 견뎌, 그땐 나랑 법적으로 이혼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는데, 여전히 한국 사회가 우리 같은 부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그땐 우리 둘뿐이었는데, 시간이 흘러 이렇게 많은 분이 소송에 임해주는 날이 오는 것을 보며 ‘그래도 무언가 바뀌고는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소송을 낸 이들 중 한명인 황윤하씨의 어머니 한은정씨는 “자녀가 동성결혼을 했기에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예상한 분도 있겠지만, ‘새딸’(황윤하씨의 배우자 박이영글씨)과 함께 하는 모든 일이 무척 즐겁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처럼 동성과의 연애나 결혼이 낯선 부모 세대 가운데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결혼식을 시킨 것도 모자라 이런 자리까지 나왔냐’고 말할 분도 있겠지만, 팔순이 넘은 내 부모님도 ‘아직 한국에서 동성 결혼이 안 되냐’고 묻는다. 팔순을 넘긴 어르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우리 사회가 더 느리게 흐르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해 좌중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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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하(왼쪽)씨 어머니 한은정(가운데)씨와 황씨의 아내 박이영글(오른쪽)씨가 한씨의 지지발언이 끝난 뒤 끌어안고 있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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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울음바다로 만든 이들도 있다. 또 다른 원고 박지아씨는 배우자 손문숙씨, 어머니 신영순씨와 어깨동무를 한 채 발언대에 올라 어머니가 손글씨로 써 온 편지를 낭독했다. 신씨는 편지에서 딸이 커밍아웃한 과정을 상세하게 떠올렸다. “어느 날 네가 너와 같은 사람들과 그 부모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한 권 줬지만, 누군가 제목을 볼까 봐 읽지 않고 책을 거꾸로 꼽아 두었다. 내 눈을 두 손으로 가리면 아무것도 안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딸은 이 대목을 읽으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어 신씨는 “외면하고 싶었고 말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지내는 시간 동안 네가 (성소수자임을) 자꾸 세상에 드러낸다는 걸 알고 ‘왜 그러냐’고 물으니 너희가 깜짝 놀라던 모습이 떠오른다. 세상과 맞서 싸울 용기를 가진 너희에게 이제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고 적었다.



그는 딸의 배우자인 손씨를 향해 “이제 지아를 (문)숙이 네게 맡긴다, 내게 돌려주지 말고 항상 사랑하고 행복하렴”이라고 당부했다. 어머니의 유쾌한 당부에, 눈물을 글썽이던 청중은 이내 함박웃음을 지었다. 박지아씨는 “아침에 문숙의 어머니와도 통화를 했는데 ‘이왕 (소송) 하는 김에 이기고 오라’고 하셨다. 두 어머니 응원에 힘입어 꼭 (동성혼 법제화를)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소송에 참여하는 부부 11쌍은 자신들의 혼인신고를 불수리 처리한 지방자치단체 6곳을 상대로 11일 불복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또 이성부부의 혼인만 허용하는 현행 민법이 혼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보고 이 조항의 위헌법률심판제청도 법원에 신청할 계획이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법률심판이 이뤄진다. 동성부부들은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지 않으면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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