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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올해 초 커피를 끊었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잠을 잘 못 잔다는 것이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밤늦게까지 뒤척이다가 겨우 잠든다. 또 다른 이유는 속이 메스껍다는 것이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헛구역질을 하거나 속이 쓰리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십년 넘게 매일 에스프레소 두세잔을 기본으로 마셨다. 그러나 무언가에 중독된 나의 모습이 싫었다. 내 삶에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덜어내기로 결심했다.
술과 탄산음료를 끊고 난 직후였다. 알코올과 설탕은 애초에 내가 중독된 적이 없기 때문에 전혀 어렵지 않았다. 집안 내력상 간이 약해서 술은 즐기지 않았다. 콜라, 사이다, 케이크 등 단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식사 자리에서 주어지면 거절하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술과 탄산음료를 마실 이유가 없었다. 나에게는 기호식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코올과 설탕을 끊었을 때는 삶에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커피를 끊은 것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비교하자면 십여년 전 고기를 끊었을 때와 비슷하다.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섭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나의 몸과 마음을 구성한다. 실제로 누군가의 식단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유추할 수 있다. 동학에서는 “밥이 하늘이다”라고 한다. 나는 이러한 말들을 비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곧이곧대로 믿는다. 섭식은 생명이 생명을 모심으로써 생명을 지속하는 방식이다. 삶에서 가장 신성한 의식이다. 고기, 생선, 달걀, 우유 등 동물성 제품을 끊고 자연 식물식을 시작한 뒤 나의 삶은 확연히 달라졌다. 피가 맑아졌고 몸이 가벼워졌다.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커피를 끊고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차에도 카페인이 있지만 커피의 3분의 1 정도이다. 오후에 마셔도 잠을 잘 잔다. 차도 각성 효과가 있지만 커피와는 다르다. 커피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15세기 수피 이슬람 수도승들이 종교적 의식으로 커피를 처음 마시기 시작했다. 그들은 커피의 힘을 빌려 밤새 각성된 상태로 빙글빙글 도는 춤을 췄다. 반대로 차는 사람을 가만히 있게 만든다. 중국에서는 수천년 전부터 차를 마셨다. 한국에서는 6세기 화랑들이 경포대와 한송정에 앉아 차를 마시며 풍류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삼신, 즉 환인, 환웅, 단군에게 차를 올리는 종교 의식이었다. 이후 유가의 선비들은 다도를 군자로 거듭나는 수행으로 여겼고, 불가에서는 참선과 다도를 동일시했으며, 도가에서는 양생과 득도의 길로 보았다.
고려 말 조선 초가 이색, 정몽주에서 김시습까지 이어지는 한국 차문화의 전성기였으며 조선 말에는 정약용, 장의순, 김정희 등이 부흥시켰다. 그들은 모두 차를 기르고 끓이고 마시는 행위를 신성시했다. 물론 예전에도 나는 차를 마셨으나 커피를 끊고 나서야 차의 참맛을 느꼈다. 마치 고기를 끊고 나서야 채소 본연의 맛을 음미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강한 자극으로부터 몸이 해방되면 부드럽고 은은한 감각에도 예민해진다. 차는 사람을 뿌리내리게 한다. 정좌하고 참선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선비들은 다도를 통해 중도, 중화, 중용을 깨쳤다. 승려들은 오랜 시간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기 위해 차를 마셨다. 심장이 따뜻해지고 이마가 열리면서 엉덩이에 중심이 잡힌다. 말을 적당히 부드럽게 한다. 차담은 그래서 술이나 커피를 마실 때의 대화와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다르다.
수많은 다인이 아름다운 다시를 남겼으나 나는 김창완의 ‘찻잔’이 제일 와닿는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온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너무 진하지 않은, 치우침 없는 중도. 손끝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따뜻한 정. 그것이 차의 사랑이다.
자연 식물식을 하고 차를 마시는 것은 결국 산업화, 근대화, 서구화 이전 한국인의 식단을 되살리는 일이다. 선조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일이다. 뿌리를 되찾는 일이다. 차 끓는 소리와 향기에 취하여 시 한 수 짓던 여유.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라이프스타일은 수피들의 밤샘 댄스보다 화랑들의 차명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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