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환씨가 기억을 떠올려 그린 덕성원 그림. 그림 속의 밭은 원생들의 노역장이었다고 했다. 안종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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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들을 불법으로 끌고 가 구타·감금·성폭력하는 등 각종 학대를 일삼은 부산 아동수용시설 덕성원 피해자 46명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피해 확인)을 결정했다. 덕성원은 형제복지원이나 영화숙·재생원에 견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실화해위는 부산시와 덕성원의 연결고리를 찾아내 인권침해에 국가 책임을 분명히 했다.
진실화해위는 8일 오후 열린 제88차 전체위원회에서 ‘덕성원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이같이 의결하고 “국가는 위헌적·위법적 공권력을 행사하여 당시 어머니와 함께 있던 신청인을 부랑아로 단속하고, 형제복지원을 거쳐 덕성원에 강제수용하는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화해위는 “신청인뿐 아니라 덕성원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미신청 피해자 45명도 신청인과 동등한 자격의 피해자로 인정한다”며 “국가는 공식 사과와 함께 피해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사람은 안종환(48)씨 1명이었지만, 진실화해위가 미신청 피해자 45명을 추가로 찾아내 진실규명 결정한 것이다.
사회복지법인 덕성원은 설립자 서용구가 1949년 11월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모의보육원을 세운 뒤, 한국전쟁 이후인 1952년 12월 부산시 동래구 중동 924-2로 옮겨 정착한 보육시설이다. 1971년 ‘사회복지법인 덕성보육원’으로 인가를 받았으며 1996년 ‘사회복지법인 덕성원’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하다가 2000년 폐원했다. 이후 사업을 전환해 현재 부산 해운대구 반송로에서 은화노인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폐원 직전인 1999년 덕성원은 수용 정원 129명에 수용 아동 62명으로 수용률이 급격히 감소하던 중이었다.
안종환씨의 덕성원 아동카드. 이름과 생년이 바뀌었다. 1977년생으로 나왔는데 실제로는 1975년생이라고 했다. 안종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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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인 안종환(당시 6살)씨는 1982년 1월11일 어머니와 함께 고향인 경북 점촌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했다가 부산역 광장에서 이유 없이 경찰에 단속돼 형제복지원에 분리수용됐다. 이후 1982년 7월18일 안씨만 덕성원으로 전원 수용되었고, 1995년 8월22일까지 그곳에서 생활했다. 안씨는 “의식주 등 열악한 생활 여건 속에서 강제 노역, 구타 및 가혹행위, 성폭력, 종교의 자유 및 교육받을 권리 침해 등 인권침해를 당했으며 현재까지 고통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2022년 10월부터 올해 6월 6일까지 각종 국가기록물을 확인하고 덕성원 인권침해 사건 미신청 피해자 45명과 덕성원 직원 출신 5명, 신청인의 초·중학교 친구, 전 부산시 공무원 등의 진술을 청취한 결과, 덕성원의 아동 불법 수용, 강제 노역, 구타 및 감금 등 가혹행위와 성폭력의 일상화, 종교 강요 등의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특히 덕성원에선 성폭행이 만연했는데, 주요 가해자는 원장 김진기의 아들을 비롯해 직원과 그의 자식들이었다. 미신청 피해자 김아무개씨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주일에 한 번 정도 원장의 장남에게, 중학생 때 직원의 장남에게 10여 차례 성폭행당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영화 ‘도가니’를 보면서 지옥과 같았던 덕성원 생활이 떠올랐다며, 어린아이들이 성폭행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끔직한 일들을 당하는 영화 속 모습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똑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덕성원은 퇴소할 때 주는 자립정착금을 미지급했을 뿐 아니라, 피해자들을 식모살이 또는 공장에 취업시킨 뒤 급여 등을 빼앗고 퇴소한 원생들에게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아 수용자들에게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준 사실도 확인됐다. 수용자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감독관청인 부산시와 해운대구는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거나 묵인·방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덕성원 시절 농작물 재배에 동원된 원생들. 맨 왼쪽이 안종환씨다. 안종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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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는 자료조사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부산시와 덕성원 간에 명시적인 위탁계약 체결은 없었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동복지시설에 사실상 아동 수용을 위탁했다며,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고 봤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①아동복지법, 생활보호법 및 사회복지사업법에 명시된 규정에 근거해 아동 수용의 위탁이나 수용 아동의 전원·퇴소를 공문을 통해 지시했고 ②각종 보조금 등 시설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했으며 ③경고·시설장 교체 요구·사업 정지·시설 폐쇄 등의 조치를 통해 통제·감독했기 때문이다.
신청인 안종환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진실규명을 해준 진실화해위에 감사한다. 하지만 아직도 피해자 500여명이 더 남아있는데, 이들은 진실화해위가 뭔지도 모를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음지에 있었던 이들의 원과 한을 나서서 풀어줘야 한다. 수용시설 특별법을 제정해 이들의 피해를 규명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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