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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AI 모델 수 세계 3위 한국… “정부 주도해 ‘국가대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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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 AI] [下] 한국 AI의 현주소

조선일보

AI ‘에이닷’ 답변 강화 훈련하는 SK텔레콤 -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SK남산빌딩의 SK텔레콤 사무실에서 SK텔레콤의 자체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 ‘에이닷엑스’ 운영을 담당하는 모델얼라인먼트팀이 회의를 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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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SK남산빌딩 5층의 SK텔레콤 자체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기초) 모델 ‘에이닷엑스’ 운영팀 사무실.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AI 비서 서비스 ‘에이닷’의 운영과 사용성 강화를 담당하는 얼라인먼트팀의 회의가 한창이었다. 이 팀의 박찬용 매니저가 “반말로 대답을 하게끔 설정이 돼있는 경우 이용자가 존댓말로 대답을 해달라고 해도 반말로 대답하는 문제가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경우 반말로 계속 대답을 해야 할지, 아니면 ‘나는 존댓말 답변이 어렵다’며 답변 자체를 거절하는 게 나을지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1~3월에 진료받은 경우 치료비는 3분기에 지급된다’는 문서에서 2월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등 오류 사례를 공유하며 수정하고 있었다. 조석환 모델얼라인먼트팀장은 “매주 1~2회씩 이 같은 회의를 진행하며 오류를 잡고, 이용자들이 더 자연스럽게 챗봇을 이용할 수 있도록 답변을 강화하는 훈련을 한다”고 말했다.

2022년 말 미국 오픈AI가 개발한 챗GPT의 등장으로 글로벌 AI 전쟁이 본격 시작된 이후 국내 대표 기업들도 앞다퉈 AI 모델과 관련 서비스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빅테크가 AI 인프라를 독점하도록 둘 수 없다’며 AI 주권(소버린·sovereign)을 지키겠다는 노력이다. 이들은 한번 AI 경쟁에서 뒤처지면 따라잡기 어렵다고 보고 사력을 다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한국의 파운데이션 모델이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는 미국 빅테크의 성능을 따라잡기는 어려워도, 최소한 한국어와 한국 문화, 맥락을 이해하고 추론하는 능력에서는 뒤처지지 않는 수준의 모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인성


◇한국 어디까지 왔나

미국의 연구단체 에포크AI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파운데이션 모델 수는 11개로 미국(64개), 중국(42개)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네이버가 2021년 공개한 국내 첫 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와 지난해 공개한 개선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비롯해 LG AI 연구원의 엑사원3.0, SK텔레콤의 ‘에이닷엑스’, KT의 ‘믿음’, 엔씨소프트의 ‘바르코’, 삼성전자의 ‘가우스’ 등이 대표적이다.

모델 수에서는 3위지만 현실적으로 오픈AI, 구글, 메타 등 미국 빅테크의 AI 수준을 따라잡기 쉽지 않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AIPRM은 올해 초 ‘AI 통계 2024′라는 자료에서 한국이 미국의 2030년 수준을 따라잡기까지 183년, 2040년 수준을 따라잡기까지는 447년이 걸린다고 분석했다. 2023년 한국의 AI 투자 규모를 바탕으로 계산한 식이다.

실제 국가별 AI 투자 규모를 보면 차이가 크다. 한국 정부가 최근 5년간 AI 산업과 관련해 투자한 예산은 103억달러(약 13조7000억원)로 미국(3285억달러)의 3%에 그쳤고 중국(1326억달러)과 비교해도 7%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런 한계에도 한국의 자체 AI 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크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 이노베이션 센터장은 “독자적인 AI 모델(파운데이션 모델)이 있어야 한국의 IT 서비스가 글로벌 기업에 종속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며 “어느 날 오픈AI나 메타가 이용료를 크게 올려버리거나 업데이트를 안 해주는 경우, 극단적으로는 아예 AI 서비스를 중단하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네이버나 다음 같은 독립적인 검색 엔진 위에서 쇼핑, 페이 등 다양한 온라인 산업이 발전한 것처럼 AI 파운데이션 모델이 있어야 이와 관련한 서비스와 기술 혁신도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인성


◇국가 주도하는 소버린AI 필요할까

한국 정부도 최근 AI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6일 국가AI위원회를 출범하고 AI 분야 전용 수퍼컴퓨터 센터이자 데이터 센터에 해당하는 ‘국가 AI 컴퓨팅 센터’를 2조원 규모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의 최신 AI 가속기 H100을 정부가 나서서 확보해 기업이나 연구자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기술정통부에 따르면 KAIST는 H100 수준의 고성능 AI 칩이 1개도 없고 민간 기업도 2000개 수준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거가 올해만 약 35만개의 H100을 사들일 계획이라고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글로벌 빅테크와 비교해 국내 기업들의 자금력과 인력이 부족한 것을 감안하면 정부가 주도해 국내 대표 AI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본 정부가 일본의 AI 스타트업 ‘사카나AI’를 지원해 1년 만에 기업 가치 10억달러를 인정받는 유니콘으로 성장시킨 것과 같은 사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민준 카이스트 교수는 “나눠주기 식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연구 기관이나 기업에 자원을 몰아주고, 그 성과는 공유하는 방식을 검토할 만하다”며 “정부가 장기 전략을 가지고 기업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대표 AI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파운데이션(foundation) 모델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다양한 작업에 적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모델이다. 언어, 이미지, 코드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다목적 모델이다. 오픈AI의 GPT, 구글의 제미나이 등이 대표적이다.

[이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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