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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이우영의 과학 산책] 소행성 24947 하우스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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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우영 고등과학원 HCMC 석학교수


어둠이 내려앉은 거실 탁자 앞에 두 사람이 말없이 앉아 있다. 탁자 위에는 노란색 통지서가 놓여있다. 날이 밝으면 그들은 죽음의 수용소로 떠나야 한다. 1942년 1월 25일, 친구에게 마지막 작별 편지를 썼다. “당신이 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우리는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독일 수학자 펠릭스 하우스도르프(1868~1942) 부부의 생의 마지막 밤 이야기다.

중앙일보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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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하우스도르프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에 재능을 보였으나 부모의 권유로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그는 약 8년간 폴 몽그레라는 필명으로 문학작품 활동을 하다가, 1904년부터 수학에 몰두하여 위상수학 분야에서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그가 창시한 ‘공간’과 ‘차원’은 수학적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1921년부터는 본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는데, 이때는 이미 저명한 수학자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1934년에 등장한 나치 정부가 유대인을 적대시하면서 나치 학생들이 하우스도르프의 수업을 거부했다. 결국 그는 이듬해 학교에서 강제퇴직 당하고 말았다. 홀로코스트가 시작될 때도 그는 집에 숨어서 논문을 썼다. 1941년이 되자, 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차례로 집단 학살 수용소로 보내졌고, 하우스도르프 부부는 수용소로 떠나기 전날 밤 집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어느 두 지점이든 서로 분리된 울타리 영역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하우스도르프 공간’이라고 한다. 하우스도르프가 소개해서 그의 이름이 붙었다. 우리가 사는 이 안락한 세상도 그 한 예다. 그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새삼 일깨워준 뒤 자신은 슬픈 운명의 별이 되어 하늘로 떠났다. 그 별 이름은 ‘소행성 24947 하우스도르프’. 정처 없이 떠도는 그 별을 생각하며 그에게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오로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행해지는 차별과 혐오는 언제 인간사에서 사라질까.

이우영 고등과학원 HCMC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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