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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fn광장] 정치인 비판하기가 공허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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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듣거나 직접 하며 속이 후련해지는 때가 있다. 특히 그의 반대편 진영이 더 나은 대안으로 생각될 때 그렇다. 반면, 반대편도 비슷하게 형편없거나 더 못한다고 느껴지면 비판자나 그 동조자는 공허함을 느끼고 속이 갑갑해진다. 대안 세력이 마땅치 않은데 특정 정치인만 비판하려니 공허하다. 양쪽 다 만족스럽지 않은데 한쪽을 비판하면 마치 다른 쪽을 편드는 듯이 비칠 수 있어 불안하고, 실제 그런 오해를 받기도 해 억울해진다. 정치인 비판하기가 카타르시스는커녕 심적 번민만 가져오니 힘이 실릴 리 없다. 이 점은 여야가 양쪽 극단으로 치우쳐 추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요즘 절절히 다가온다.

윤석열 대통령 경우가 특히 그렇다. 그는 국가원수이자 최고 지도자로서 여러 비판을 받고 있다. 도발적인 야권을 품는 포용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여권 내의 이견을 수용하고 불만을 다독이려는 의지와 노력도 미흡해 보인다. 영부인을 둘러싼 구설수가 블랙홀처럼 다른 사안들마저 빨아들여 국정을 망치고 있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있다. 체계적 국정철학이 명료히 드러나지 않으며, 국정이 각종 돌발성 추문과 의혹으로 흔들리는 현 상태는 뱃사공 없는 배가 격랑에 떠내려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국정 수행의 원동력인 국민의 지지를 포기한 듯 정부의 공과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한다.

이 지경이니 윤 대통령과 측근 인사들은 다각도의 비판을 받아야 하고, 그에 맞춰 이모저모 변화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그들이 비판에 얼마나 겸허하고 변화에 얼마나 진심일지는 차치하자. 별개의 문제로, 야권이 믿음직한 대안 세력으로 비치지 않고 또 다른 병폐 집단처럼 행동하는 탓에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공허해지고 힘이 실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야권은 실질적 정책 의제로 국정의 균형을 기하며 건강한 대안 세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방기하고 있다. 정책보다 대통령 주변인들의 일탈에 집중하며 극단적 수단인 탄핵을 남발하고 있다. 심지어 "일을 못하면 선거 전이라도 끌어내려야"라며 체제 부정의 극언을 퍼붓는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부담을 덮어 대권을 잡는 게 유일한 목적인 듯 극한의 대결적 정치공세만 취하는 가운데 국정을 책임질 듬직한 대안 세력이 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다.

야권이 이러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상대적으로 공허해지고 힘이 빠진다. 역으로, 야권과 이 대표에 대한 비판도 반대편의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에 공허해지고 동력을 잃는다. 정치 양극화 시대, 여야가 각기 반대쪽 극단에 똬리를 틀며 국민 전체를 위한 대표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쪽에 대한 비판도 공허한 소리로 들리며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양극단의 정치인과 세력이 비판을 통해 변화·정화되지 않으면 체제 전반에 향상과 발전의 희망이 생길 수 없다.

이런 암담한 상황은 중간에 서서 양쪽을 비판하는 비정파적인 사람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이쪽저쪽 경종을 울리자니 대안이 없어 공허해지고, 양비론을 내면 기회주의자라거나 이상주의적 환상에 빠졌다고 공격받는다. 그때그때 특정 진영을 비판하면 상대편의 홍위병이란 누명도 쓴다. 이에 따라 양극단의 극렬 정파성을 비판하는 온건한 중도, 중용의 목소리는 점점 사그라든다. 반면 극단적 정파성에 지배돼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정치꾼들만 정신무장이 돼 심적 번민 없이 상호 공방을 주고받는다.

중간지대의 국민은 양극화가 강화되는 이런 악순환의 연속을 개탄만 할 수는 없다. 공허하고 갑갑하더라도, 매도당하더라도, 또 당장은 힘이 실리지 않더라도 인내심 있게 정치인들의 잘못된 행동을 비판해야 한다. 당장 효과가 없어도 그런 노력을 꾸준히 해야만 정치인들의 막무가내 행동이 조금이라도 줄지 않을까.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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