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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휴대폰→손말틀, 초등학교→첫배곳…농부가 11년간 다듬은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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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푸른배달말집’을 펴낸 최한실. 사진 최한실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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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최한실(75)씨는 올해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우리말겨레모임)이 한글날을 맞아 뽑은 ‘우리말 으뜸 지킴이’가 됐다. 지난 3일 우리말 말집(사전) ‘푸른배달말집’을 펴낸 덕이다. 최씨는 지역 생태공동체 푸른누리 등과 함께 11년 동안 우리말을 찾고 모아 1560쪽에 이르는 이 책을 펴냈다. 버려야 할 한자말을 짚고 대신할 우리말을 빼곡히 정리했다. 우리말이 잊혀진 만큼 푸른배달말집 속 낱말들은 오히려 낯설게 여겨지기도 한다. 휴대폰·스마트폰을 버릴 말로 삼고 ‘손말틀’로 적은 뒤 그 뜻도 우리말로 풀이했다.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과 김경희 지식산업사 대표,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가 1998년 만든 우리말겨레모임은 매년 우리말 지킴이와 우리말 헤살(훼방)꾼을 발표하는 등 우리말 쓰임을 바로잡기 위한 활동을 펴오고 있다.



578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우리말 으뜸 지킴이’ 최한실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학생들의 ‘문해력 논란’을 두고 “아이들의 말 다루는 힘을 떨어뜨린 건 학교 교육”이라고 꼬집었다. “아이들에게 쉬운 우리말을 가르치면, 쉬운 말로 말을 지어 쓸 수 있는 힘이 길러질 텐데 배곳(학교)에선 한자로 된 말을 한글로 써서 배우잖아요. 열두해나 일본에서 건너온 한자 말을 어설프게 한글로 가르치고, 아이들이 모른다고 하면 소가 웃을 일이죠.” 아이들 탓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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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배달말집’. 사진 안그라픽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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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다루는 힘을 떨어뜨리는 어설픈 한자어’를 쓰게 된 데는 서양 문물을 일본을 통해 받아들이며 일본식 한자어를 남용한 탓이 크다. 최씨는 이런 낱말을 ‘한글왜말’이라고 불렀다. 그는 “우리말을 밀어내고 배움책(교과서) 안방을 차지한 왜말부터 바꿔야 한다”며 “첫배곳(초등학교) 배움책을 펴면 ‘숨’보다 ‘호흡’이 먼저 나온다. 우리말로 배우고 익힐 수 있게 배움책을 새로 써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자어인) ‘준비하다’라는 말 뜻이 더 깊다면 모르겠는데, ‘마련하다’거나 ‘장만하다’ 같은 말이 있으니 굳이 한자로 된 말을 쓸 까닭이 없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말을 지어 쓰는 힘이 떨어진 건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씨는 “‘졸혼’이란 말은 2016년쯤 일본 새뜸(신문)에서 만든 말을 우리 새뜸이 받아들여 쓴 말”이라며 “새로운 말이 물밀듯이 밀려드는데, 우리말로 우리가 짓지 않으면 일본 한자 말로 짓게 된다. 이젠 일본 한자 말로도 짓지 않고, 일본에서 지으면 바로 써버린다”고 말했다.



우리말겨레모임은 으뜸 지킴이로 최씨를 뽑으며 “나라가 할 큰일을 개인이 한 것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한자 말과 미국 말에 몸살을 앓는 우리말이 빛나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모임은 또다른 우리말 지킴이로 마을과 거리 이름을 우리말로 지어온 최민호 세종시장과 공원 90여곳 이름에 우리말을 넣은 조규일 진주시장, 한글왜말을 우리말로 바꿔 알리는 국어 교사 구자행씨, 미국 뉴욕 공공학교 과학교사로 학생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는 김은주씨 등을 뽑았다.



반대로 우리말에 훼방을 놓는 ‘으뜸 헤살(방해)꾼’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뽑혔다. 세종로공원 한글글자마당과 조선어한말글수호탑 자리에 국기게양대를 세우겠다고 한 탓이다. 동 이름을 ‘에코델타동’으로 바꾸려고 한 김형찬 부산 서구청장과 새도시에 ‘마린시티’ 같은 이름을 붙인 박형준 부산시장도 헤살꾼으로 뽑혔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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