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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여적] 학생들의 ‘휴대폰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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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사건, 사회적 이해 충돌과 갈등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하는 사건 등의 경우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재판하지 않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 전원합의체 판결이 국민 삶에 미칠 영향이 큰 만큼 대법원은 미리 사건 쟁점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관련 당사자들의 입장을 들어보는 공개변론을 생중계로 진행한다. 판결의 설득력과 정당성은 대법관에 의해 하달되는 것이 아니라, 투명하게 공개된 정보를 근거로 진행되는 논의 과정 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법원에 전원합의체가 있다면 국가인권위원회에는 전원위원회가 있다. 두 기관의 성격은 다르지만, 인권위 결정이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근본 가치 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지난 7일 인권위 전원위원회가 지난 10년 동안 일관되게 내려온 판단을 하루아침에 뒤집고, ‘교내 휴대전화 일괄 수거를 명시한 학칙은 인권침해가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논의 과정과 표결은 모두 비공개로 진행됐다.

‘교내 휴대전화 수거는 인권침해’라는 결정이 처음 내려진 2014년과 비교해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과 의존성이 더욱 큰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미국·유럽에서도 학생들의 인지능력과 집중력 향상을 위해 교실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면 금지보다 학생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교육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명제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스마트폰이 10년 전과 달리 단순한 통화 도구가 아니라 각종 정보를 취득하는 생활필수품으로 발전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교내 휴대전화 일괄 수거는 학생 인권과 교육 철학에 대한 가치관이 충돌하는 사안이다. 인권위는 기존의 결정을 뒤집고 싶었다면, 지난 10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기에 다시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를 설명한 후 학생·교사·학부모 등을 한자리에 모아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럼에도 인권위는 공개가 원칙인 운영규칙까지 무시하며 전원위원회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이런 식으로 내려지는 인권위 권고에 앞으로 어떤 권위와 힘이 실릴 수 있을까.

경향신문

사진출처 언스플래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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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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